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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돈 없어도 사게 만드는 디자인의 매력

■사물의 언어(데얀 수직 지음, 홍시 펴냄)<br>정체성·자의식을 구성하는 수단<br>언어보다 더 강한 표현력 갖기도<br>소유 자체로 즐거움 줘 소비 유도





필요 없는데도 갖고 싶고, 이미 갖고 있는데도 또 사고 싶고,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구입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물건들이 있다. 런던 디자인뮤지엄 관장인 저자는 그 이유를 "디자인의 힘"에서 찾고 있다. 그는 디자인의 의미를 "세상을 바라보는 효과적인 방식의 제공자"이자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려 한다면 반드시 탐구해야 할 암호"라고 얘기한다.

아직도 디자인이 단지 물건을 예쁘게 만들고 멋 부리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면 생각을 바로잡을 때다. 디자인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아이폰을 만든 조너선 아이브에게 영향을 준 디터 람스가 있다. 람스는 시각적인 과잉을 절제함으로써 유행을 무색하게 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지적이고 엄격한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즉 디자인의 최우선 덕목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디자인에는 우리의 경제 체제도 반영돼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이 남긴 자국도 보인다. 그것은 일종의 언어이자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들의 반영이다."

디자인은 집단적이든 개인적이든 정체성과 자의식을 만드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때로는 그 어떤 언어보다 더 강한 표현력을 갖기도 한다. 일례로 영국 신문들은 헤드라인에 미국의 고속도로 표지판용 서체인 '인터스테이트(Interstate)체'를 사용한다. 날씨가 궂어도, 고속으로 달리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디자인의 글씨체가 타블로이드 신문에 들어가면 작은 방안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 같은 효과가 난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남자들이 열광하는 총과 자동차에도 묘한 디자인의 장치가 숨어있다. '발터 PPK' 자동권총은 안전장치가 풀렸을 때만 검은 바탕의 빨간 점이 보인다. 이 작지만 강렬한 색 조합은 미적 선택인 동시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안전을 위한 것이며 상대에게 위협을 주는 신호로도 작용한다. 이 색상 조합의 디자인 원리는 1980년대 폴크스바겐의 골프GT모델에서도 똑같이 사용됐다. 차체와 라디에이터 그릴에 검정을 칠하고 라디에이터의 테두리에 가는 빨간 선을 그린 것이었다. 자동차가 총을 연상시키는 것은 불쾌함보다는 오히려 강한 매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디자인은 환상을 부추기고 소유 자체로 즐거움을 느껴 돈을 쓰게끔 유도한다. 마놀로 블라닉 구두는 여성의 섹시한 매력을 한껏 돋보이게 하지만 가벼운 운동화에 비해 신고 걷기 힘들 뿐만 아니라 수백 배나 비싸다. 페라리는 그 어떤 자동차들보다 주목을 많이 받지만 도시의 교통수단으로는 실용적이지 않다. 저자는 "유용성이 낮은데도 훨씬 더 높은 지위를 누리며, 쓸모 없을수록 그 가치는 더 높아지는 물건들이 있다"며 고급스러운 유용성, 쓸모 없는 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대량생산이 문화에 미친 영향 때문에 가치 없는 재료로 대단히 귀한 물건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의 힘이 강렬해졌고 디자인이 추구하는 것 역시 바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책의 말미에서 드러난다. 그는 1932년 경제 공황에서 벗어나고자 세상 사람들을 설득했던 광고의 선구자 어니스트 엘모 컬킨스의 주장을 인용했다. "우리는 80년 전 엘모 컬킨스가 '우리 모두가 소비를 통해 대공황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의무'라고 지적했던 그 때와 똑 같은 지점에 와 있다"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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