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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패망이 주는 교훈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월남(베트남)전쟁 때 찾았던 호치민을 30년 만에 다시 찾게 된 감회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군의 참전 사실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으며 베트남이 어떻게 패망해 공산화됐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궁금증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것이다. 주한미군이 안보핵심 베트남항공의 스튜어디스는 산뜻한 아오자이 차림이었으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시름에 찬 듯한 꽁가이(처녀를 일컫는 베트남말)의 미소 없는 얼굴들은 아직도 남아 있는 전쟁의 아픔 탓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베트남전에 관한 책을 구하려고 교보문고에 들렀다. 전쟁코너에 관련 서적이 두권밖에 없었다. 베트남전쟁의 기록과 교훈이 담긴 책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이 책들에 기술된 전쟁의 참상, 베트공의 등장, 파리평화협정, 그리고 베트남의 패망 과정이 역사의 교훈으로 살아나 나의 폐부를 찔렀다. 호치민시 중심가의 통일궁 옆 전쟁기념관은 프랑스 식민시대의 감옥 자리였다. 단층건물로 6개관으로 돼 있었고 손바닥만한 입구 마당에 미군 전투기 2대, 몇 대의 탱크 및 야포와 포탄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관 내부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 인권이라곤 없었다.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미국은 연인원 650만명의 젊은이들을 참전시켰고 한때 최다 54만여명까지 주둔했다. 전쟁으로 베트남인 300만명과 미군병사 5만8,000명이 사망했다. 한국군도 지난 65년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된 후 7년 동안 연 35만명이 참전했고 1만5,922명의 사상자를 냈다. 73년 1월27일 파리평화협정으로 그해 3월29일 미군이 완전철수했고 한국군도 3월23일 철군을 완료했다. 파리평화협정은 ▲베트남의 독립ㆍ통일ㆍ영토보전 ▲정전, 외군철수, 군사기지 철거 ▲북위 17도선 비무장지대 설정과 대화에 의한 통일 등 6개항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1년 뒤인 74년 4월30일 월맹군의 대통령궁 진격으로 베트남은 공산화됐고 미군철수 후 대화로 통일문제를 다루자던 파리평화협정도 휴지가 되고 말았다.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베트남참전전우회장은 “베트남패망의 교훈을 명심해 앞으로 남북문제와 통일문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베트남이 패망한 원인은 대통령궁 내부를 포함한 사회 각 분야에 베트공 간첩망이 침투, 미ㆍ베트남 이간책동으로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미군철수를 부르짖게 된 데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독은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주독 미군을 유지함으로써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을 이룩했다. 흔들림 없는 한미관계가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는 원동력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 덕분에 한국도 오늘날의 경제발전을 이루는 시발점이 됐고 미군의 계속적인 한국주둔을 조건으로 파병이 이뤄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호치민박물관이 전쟁의 잔악상을 부각시킨 것이라면 하노이박물관은 월맹군의 용맹성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흰머리에 주름이 진 늙은 어머니의 가슴에 훈장이 줄레줄레 달린 사진은 증오심을 자극하는 듯했다. 한국군과 관련된 사진은 맹호부대가 태극기를 휘날리며 베트남땅에 상륙하는 사진 한장뿐이었다. 휴지화된 파리평화협정 공산화 이후 수많은 베트남의 해상난민(보트피플)이 바다에 빠져 죽었고 베트공도 요직에는 기용되지 못하는 찬밥신세가 됐으며 사회는 비밀경찰로 국민 모두 긴장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권력을 부자간에 세습하는 독재체제를 싫어하고 개혁개방적인 나라를 좋아하는 나라가 돼 있었다. 북핵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자유민주체제를 지키고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미군철수 후 대화를 통한 통일을 약속한 파리평화협정이 휴지화된 과정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우리도 대처해야 한다. 공산 베트남이 그렇게 먼 나라는 아니었다. <권혁승(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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