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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 60년] <1부-2>한반도지도를 바꾼 국토개발계획

'428km 국토대동맥' 불과 2년반만에 완공<BR>공단건설 본격화… 야산이 하루뒤엔 평지로<BR>인구 도시집중따라 주택문제 사회이슈 부상


한반도지도를 바꾼 국토개발계획 [한국건설 60년 건설강국 코리아 세상을 바꾼다] '428km 국토대동맥' 불과 2년반만에 완공공단건설 본격화… 야산이 하루뒤엔 평지로인구 도시집중따라 주택문제 사회이슈 부상 관련기사 • 소양강댐·포항제철·반포개발… SOC·건축 역작 즐비 “대국토 건설계획을 발전시켜 고속도로와 항만 건설 및 4대 강 유역의 종합개발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 착공하겠습니다.” 지난 67년 4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제6대 대통령 선거공약을 발표했다. 이어 그는 5월 초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ㆍ강릉ㆍ부산ㆍ목포를 잇는 기간고속도로 건설’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35년 간 우리 국토의 대동맥으로 불려온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본격화하는 동시에 건설산업이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우뚝 서기 위한 국토 대개발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대역사=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건설사는 물론 경제에서도 단순한 고속도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최근 대한건설협회가 건설 60주년을 기념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사회간접자본(SOC) 부문 최고의 프로젝트로 꼽힌 것도 이 때문이다. 건협의 한 관계자는 “경부고속도로는 당시만 해도 이렇다 할 기술력이 없던 우리 건설업계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며 “우리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데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비롯된 물류망 확충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 발표된 후 10개월이 지난 68년 2월1일이었다. 그리고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공사 시작 불과 2년 반 만인 70년 7월7일이었다.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역사가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 단지 하나 짓는 기간에 이뤄진 셈이다. ◇“주판은 처음부터 엎어놓았잖아”=경부고속도로가 이처럼 단기간에 건설된 것은 ‘불도저식’으로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준공을 두 달 앞두고도 공사에 진척이 없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께 ‘주판을 맞춰놓고 하실 겁니까. 엎어놓고 하실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주판은 시작할 때부터 엎었다’였습니다.” 최대의 난구간으로 꼽히는 당재터널 건설 당시 현장소장을 맡았던 현대건설의 양봉웅옹(84ㆍ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의 회고다. 이후 공사현장에는 일반시멘트보다 훨씬 비싼 조강시멘트(굳는 속도가 빠른 시멘트)가 투입됐고 280일로 예정됐던 공기가 40일로 줄어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런 대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황간 공구 묘금리~마산리 구간 공사를 맡았던 대림산업은 사사(社史)에서 “집 한채 보이지 않는 산간벽지여서 20㎞나 떨어진 주변 지역에서 인부들을 모아 출퇴근시키며 시공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렇다 할 시공경험은 물론 자재와 장비조차 부족했음에도 토공량 6,000만㎥, 연인원 900만명이 투입된 대역사는 혼을 아끼지 않은 건설업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산업기반을 닦다=경부고속도로 개통은 이후 우리 경제가 대규모 SOC 확충과 함께 70년대 고도성장의 기반이 된 중화학공업 기반 건설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2년 후인 72년부터 81년까지 10년 간 이뤄진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그것이다. 60년대 울산ㆍ마산ㆍ포항에 이어 구미ㆍ창원ㆍ여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중화학공업기지가 잇따라 건설된 것도 이 시기다. 70년대 초 착공된 319만평 규모의 구미공업단지의 경우 낮밤을 가리지 않고 1,000여대가 넘는 중장비가 동시에 동원돼 멀쩡했던 야산이 하루가 지나면 평지로 변하곤 했다. 당시 헬기로 이 지역을 순시했던 고 박 전 대통령이 “결전장이 따로 없다. 저기가 바로 결전장”이라고 감탄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하지만 70년대 국토개발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건설산업과 사회에 ‘거점 개발’로 많은 문제점을 남기기도 했다. 대도시와 대규모 공단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70년대 말부터 ‘주택’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조우현 전 건설교통부 차관(현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원장)은 “70년대 말부터 집이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며 “이후의 주택정책은 ‘집값 안정’과 ‘주택경기 회복’이라는 상반된 정책목표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입력시간 : 2007/06/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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