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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정상 고치랬더니 숫자로 때우려 하나

이해하기 힘든 전시행정이 또 등장했다. 총리실이 각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게 3~5건씩 잘못된 관행을 자수하라고 한 모양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면서 할당된 건수를 채우기 위해 자신이 한 일을 부정해야 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로선 쓴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비정상적인 관행을 고치기 위해 또 다른 비정상이 동원되는 아이러니가 할말을 잃게 만든다.

말 못할 고충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정상적인 관행의 정상화'를 지시했고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각 부처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다그쳤으니 조바심이 날 법도 하다. 게다가 이미 다음달 중순 부처와 기관별로 성적표를 발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루 빨리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는데 닦달하지 않을 수 없을 터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급조된 정책의 실패를 수 차례 경험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이루겠다며 내놓은 세법개정안은 서민들의 분노 속에 일주일 만에 뒤집혔고 입법전쟁으로 치달았던 경제민주화는 기업 투자를 움츠리게 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지시에 맞춰 책상 위에서 그림을 그리다 발생한 비극들이다. 철학 없이 그저 목표달성만을 향해 달려간다면 비정상의 정상화 역시 똑같은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시든 잎을 쳐낸다고 병든 나무가 되살아나지는 않는다. 곪은 원인을 찾아내 치료해야 한다. 회의 때마다 받아 적느라 메모장 속으로 들어간 책임장관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국민과 다른 눈높이를 끌어내리는 게 그것이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래야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떤 게 정상인지 분간할 수 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필요한 건 숫자와 시간이 아니다. 종합발표니 성적표니 하는 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국민에게, 기업에 이것만은 바로잡겠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실천으로 확인시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숫자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박수 치지 않을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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