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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치로와 김인식

스포츠에서 드러난 일본의 교만<br> 실력 키워 의연하게 대처를

[데스크 칼럼] 이치로와 김인식 스포츠에서 드러난 일본의 교만 실력 키워 의연하게 대처를 홍현종 문화레저부장 hjhong@sed.co.kr 피바람이 부는 강호. 사무라이를 자처하는 사나이의 서슬이 퍼렇다. “칼을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 검을 뽑기도 전 그가 내뱉은 독기에 이내 질려버릴 줄 알았던 상대는 그러나 끄덕 않는다. 마침내 부딪힌 검. 나동그라진 자는 자칭 사무라이다. 두 번째 승부. 결과는 마찬가지. 치욕의 패배에 할복이라도 할 줄 알았던 그는 나자빠지면서 알 수 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명예를 목숨처럼 지킨다는 사무라이, 그들이 자랑하는 그 정신은 이제 박물관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얘기가 돼가는 게 오늘의 일본이다. 스즈키 이치로.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7년 연속 수위타자, 3년 연속 리그 MVP. 일본의 자랑인 그가 야구 종주국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지난 2001년이다. 첫해 신인왕을 비롯, 한해 최다 안타 등 메이저리그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거둔다. 일장기를 가슴에 단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시작 전, 경기 때마다, 상대에 무릎을 꿇은 뒤조차도 그가 쏟아낸 여러 색깔 ‘오기’의 말들은 번쩍이는 그의 야구 이력만큼이나 세인들의 눈에 띄기에 충분했다. 야구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 빼고 현역 시절 김인식 감독을 기억하는 일반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일은행 투수 시절 어깨부상으로 조기 은퇴한 그는 89년 해태타이거즈 코치로 프로와 인연을 맺었다. 늦깎이 지도자로서 경륜을 쌓아갔지만 순탄하다고 보기에는 그의 야구 인생의 굴곡이 적지않다. 뇌경색. 2004년 쓰러진 후 걸음걸이조차 불편한 그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부터 어쩌면 기적이었다. WBC대회. 신경을 긁어대는 상대편의 말에도, 목표를 뛰어넘는 결과에도 그는 표정 한번 움찔하지 않았다. 화려한 수사를 쏟아낼 만큼 자신의 인생이 빛나지 않았음에 대한 ‘자의식’(自意識)적 이유가 아니라면 삶의 큰 장벽을 넘어온 단단한 그의 '내공' 때문일 듯싶다. 세계적 스타로 치달은 선수와 인생의 쓴맛 뒤 감동의 승리를 일궈낸 한 야구 감독을 통해 우리가 읽어내려는 건 일본인과 한국인이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조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의 근세사는 누가 뭐래도 화려했다. 그 교만이 결국 세계대전으로 연결, 이웃들은 물론 세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교만 끝에 당한 패배를 다시 ‘씻을 수 없는 굴욕’으로 자기 암시화시키는 이치로의 말에는 패망 반세기를 넘기면서도 이웃들에 대해 뉘우치지 않고 고개를 쳐드는 제국주의 망령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성공이 교만으로, 그리고 오기로 확대되는 일본인 의식 내 품고 있는 건 이른바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 자집단(自集團)을 절대화하고 타집단을 공포와 시기심으로 대하는 집단 감정이다. 일부 외국 노동자들이 학대받는 이땅의 현실도 부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스포츠란 법도(法道)가 있는 경쟁에서 만만해보이는 상대를 드러내놓고 모욕하는 한국 스포츠 선수를 아직 들어본 바 없다. 국민성은 문화, 스포츠에서 이처럼 드러난다. 이치로라는 한 공인으로부터 상징되는 일본의 '곤조(根性)'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간 룰(rule)을 멋대로 바꿔버리는 미국의 오만함이 바로 그 사례다. 아시아국들을 상대로 한 일본의 습관성 ‘오기’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사안 사안별 감정에만 휩쓸리지 않는 일이 출발점이다. ‘차분한’ 전략, 그리고 더 기본이 돼야 할 점이 우리 자신의 실력 함양이다. 누구누구의 친일성 발언에 몰려다니며 온 나라가 들끓고 일본 내 극우세력의 허튼소리 하나하나에 비분강개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 승부는 결코 입담의 결과로써 갈리는 게 아니다.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한일 관계에서 정부가 취할 바는 ‘고요하지만 단호한 전략’, 그리고 개인은 ‘쿨(cool)’한 대일관(對日觀)을 갖는 일이다. 쇼비니즘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교묘하고 경박한 이웃 다루는 그 방법을 이번 WBC대회를 통해 김인식 감독이 보여줬다. 입력시간 : 2006/03/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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