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에 우리나라의 앞선 정보통신기술(ICT)과 산업을 전파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어나갈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ICT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죠."
최양희(사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데이터타운' 실증사업에 이어 다음달 미래부가 내놓을 'ICT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의 큰 틀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여러 전략 가운데 하나로 개발도상국 시장 개척을 강조했다. 정부가 먼저 ICT 관련 정보화전략계획(ISP) 등을 정책적으로 개도국에 전파하면 중소·벤처 ICT 기업의 진출도 용이해질 것이라는 게 전략의 본질이다. 그는 이어 개도국 외에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더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세계 시장에서의 중국의 도전을 단순한 위협으로만 보지 않고 기회로 삼겠다는 판단에서다. 덧붙여 오는 3월 발표할 '연구개발(R&D) 혁신방안'에 대해서는 국가 R&D 심의·조정·기획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R&D 과제 선정단계부터 질적 평가를 강화하면 각 대학과 연구소 등도 교수 승진 등에 대한 기준을 자연스럽게 이와 맞출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또 최근 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인터넷발전기본법'에 관해서는 굳이 제도를 강요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 장관은 "국가 R&D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제 양보다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주된 철학"이라며 "인터넷발전기본법의 경우 인터넷에 대한 국제적인 컨센서스가 자율에 맞춰진 만큼 미래부가 따로 법을 만들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개도국 시장, 벤처기업 성장판으로
최 장관은 현재 한국 ICT 생태계의 문제점으로 신생 대기업이 출현하지 못하는 구조를 들었다. 지난 1980년대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로 시작해 2000년대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10년이 멀다 하고 선두기업이 바뀌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수십년째 삼성·LG 등 늘 같은 기업만 상위 리스트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는 ICT처럼 트렌드가 순식간에 바뀌는 시장에서는 기존 기업만으로 혁신에 계속 대응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수십년 동안 소니·파나소닉 등 일부 기업에만 의존하다 경쟁력을 상실한 일본 전자업계처럼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 장관은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허리 역할을 할 중견기업이 없다는 것을 한국 ICT 생태계의 핵심 고민으로 꼽았다. 중견기업이 거의 없다는 것은 최근 벤처에서부터 자생한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ICT 업계의 경쟁을 활성화해 우리도 상위기업의 랭킹이 빠르게 바뀔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현 산업계와 재계의 공감을 먼저 끌어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ICT 산업은 소프트웨어(SW) 경쟁력과 개방형 생태계를 앞세워 뛰는 미국, 기술력과 자본을 확보한 중국, 엔저 기반으로 다시 성장하는 일본 사이에 낀 '신(新) 넛크래커' 상황"이라며 "정부의 역할과 ICT 정책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장관은 이에 따라 다음달 선보일 'ICT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에 개도국과의 전략적 협력 구축을 통한 시장확보 방안이 포함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성장이 유망한 벤처기업을 위해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는 시장은 공공조달 시장, 기존 글로벌 경쟁시장 등인데 이보다는 개도국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게 본 셈이다.
대상 시장은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1,000~1만5,000달러 정도 되는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 장관은 무엇보다 미국·중국·일본 등 우리와 같은 ICT 선진국 대부분은 정치 외교적으로 패권지향 국가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부담이 적은 우리나라가 가진 장점이 분명히 있다고 봤다. 정부에서 ISP부터 여러 기술지원까지 패키지로 길을 터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예상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에서도 확인했듯이 ITU 내에서만도 대상 국가가 50~100개에 달한다"며 "지금은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먼저 파트너십을 맺고 패키지 지원을 받으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부상하는 중국,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야
최 장관은 최근 세계 시장까지 잠식하는 중국 ICT 파워에 대한 대응방안과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중국 출장기간 레이쥔 샤오미 회장과 만난 것을 비롯해 각종 정관계 인사와 기업인을 만나며 현지 기업들의 엄청난 속도를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ICT만 한정해도 신생기업이 넘쳐나는데다 세계 시장 1위 점유 제품을 쏟아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이런 빠른 발전상의 이유로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풍부한 인력을 우선 꼽았다. 또 내수시장의 힘을 바탕으로 재투자와 추가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시스템에도 주목했다. 최 장관은 "지금은 한국이 ICT 선수국가 중 하나지만 중국의 발전속도를 보고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생겼다"며 "벤처기업만도 300만개에 달할 정도로 미국을 제외하면 지금 중국만이 제대로 된 생태계의 틀을 갖추는 성과가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중국 자본과 인력에 대해 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미 중국 ICT 업계의 막강해지는 힘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장벽을 쌓으면 종국에는 중국의 50분의1 시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중국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이제 어떻게 그들을 활용할지에 몰두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인력과 기술·자본을 한국의 벤처생태계로 주저 없이 끌어들이고 우리 기업인도 중국 현지에서 창업하며 공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장관은 "중국의 인구를 감안할 때 '중국에서 1등을 하면 못해도 세계 5등'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대가 됐다"며 "대부분의 한국 젊은이들이 창업을 위해 무조건 미국부터 가는데 문화장벽이 더 낮은 중국도 앞으로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2015년은 R&D 혁신 원년으로 삼을 것
최 장관은 과학 분야 정책과 관련해 올해를 'R&D 혁신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다음달 공개될 R&D 혁신방안에 제대로 된 예산편성안과 더 나은 연구 기반 지원안을 모두 담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국가 R&D 과제에 대한 미래부의 심의·조정·기획 기능을 강화해 대학·연구소 등의 혁신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일부 대학에서만 도입한 연구자 질적 평가를 정부 주도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수한 연구성과 창출과 R&D 생산성 제고를 위해 기존 R&D 지원 시스템을 근본부터 혁신할 것"이라며 "국가 R&D 과제 선정, 심사 평가에서 정부의 기준이 질적 평가에 맞춰져 있으면 다른 대학과 연구기관의 내부 규정도 그에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기초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확대와 우수 연구자에 대한 장기지원 등 중장기 성장 기반도 다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래부에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발전기본법은 강제할 의지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래부 차원보다 오히려 국회에서 논의하는 사항으로 입장이 다소 다르다는 것.
아울러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에 대해서는 "이용자 간 부당한 차별이 없어지고 소비자들의 알뜰하고 합리적인 통신소비가 나타났다"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단말기유통법개정안에 대해 논하기보다 지금껏 나타난 긍정적 효과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몰고 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 장관은 "단말기유통법 이후 지원금이 올라가고 출고가가 낮아져 단말기 가격 부담이 사라졌다"며 "단말기유통법이 이제 시장에 안착하고 있는 만큼 긍정적 효과를 강화하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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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이종배 정보산업부장 ljb@sed.co.kr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