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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채권단 빚 독촉… 핵심 인력 이탈… "총없이 전쟁터 내몰린 꼴"

[건설사 워크아웃 왜 실패하나] <br>경기침체 맞물려 삼중고 신음… 노른자위 부지까지 헐값 매각<br>신규사업 추진할 엄두도 못내<br>1차 구조조정 업체 11곳 중 경영 정상화 된 곳은 2개 뿐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채 기업경영개선(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멈춰선 한 건설사의 아파트 공사 현장. 워크아웃 건설사들은 부동산 경기침체 장기화에 채권단의 무차별적인 자산매각 요구, 인력 유출로 회생은 커녕 퇴출을 더욱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경제DB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중견건설사 A건설에 근무하는 김모씨(40)는 회사에서 떠넘긴 미분양 아파트 때문에 밤잠도 자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할인분양이라도 해서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얼마 전 이 아파트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참여한 채권단 중 일부가 자신이 손해볼 수는 없다며 할인 판매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모씨는 "자신들의 손해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일부 채권단의 주장 때문에 1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을 지경"이라며 "그동안 일부 채권단의 발목 잡기는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부터 본격화된 건설업체 구조조정이 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건설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을 대신할 수익사업을 찾지 못한 데 있지만 경영정상화를 함께 이뤄야 할 금융권의 비협조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A사의 전 직원은 "워크아웃 전 제출한 경영정상화 방안대로 추진된 것은 금융권의 채권회수 밖에 없었다"며 "회사를 정상화하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1차 구조조정 업체 중 2곳만 실질적 정상화=2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100위 내 건설사 중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이나 기업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건설사는 23곳에 달한다. 최근 5년 사이 워크아웃 등으로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건설사까지 포함하면 30곳이 훌쩍 넘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주택전문 건설사가 정상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인 셈이다.

특히 2009년 정부 주도의 첫 건설업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돼 워크아웃을 시작한 11개 건설사 중 계열사 합병이나 매각이 아닌 자구노력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이뤄낸 업체는 경남기업과 이수건설뿐이다. 월드건설ㆍ풍림산업ㆍ우림건설 등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를 피하지 못했으며 동문건설ㆍ㈜삼호 등은 여전히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다.

B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을 통해 정상화된 건설사가 거의 없자 건설업체 워크아웃이 업계(work)에서 퇴출(out)시키는 절차라는 자조섞인 말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경기 침체가 가장 큰 적, 하지만=건설사들의 경영정상화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건설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공공공사 발주 물량도 줄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이와 함께 금융기관 등 채권단의 비협조적인 태도도 경영정상화에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C건설은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던 2009년 부산에 600가구 규모의 주택사업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권은행의 끈질긴 요구로 헐값에 땅을 다른 기업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2년 후 이 부지를 인수한 다른 건설사는 최고 20.6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아파트 분양에 성공했다.

C건설 관계자는 "신규 사업을 해야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산을 팔라'는 말뿐이었다"며 "당시 가지고 있던 땅 가운데 단 한 곳에서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면 법정관리를 신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요구대로 다 줄였지만=2009년 직원 수가 400여명이던 C사는 올해 직원 수가 100여명으로 3년 만에 70% 이상 인원이 줄었다. 특히 핵심 사업이었던 주택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해외 부문과 공공영업 부문의 직원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급여도 3년 전에 비해 평균 30% 이상 삭감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주택사업 이외에 공공 부문에도 줄기차게 진출하려고 했지만 핵심인력이 빠져나간 다음이라 다른 회사와 경쟁을 할 수가 없었다.

S건설 관계자는 "수주 영업은 결국 직원들이 갖고 있는 인맥 등 네트워크 싸움"이라며 "총과 총알을 다 빼앗은 후에 전쟁터로 내몬 것과 같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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