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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문제는 중산층 복원이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학 학자금 대출은 미국 경제의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올해 졸업한 대학생들의 평균 빚은 3만3,000달러로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2007년보다 32%나 늘었다. 전체 학자금 대출 빚은 1조1,000억달러에 이르고 가계 대출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크다.

사회에 갓 진출한 대졸자들의 혹독한 현실은 부동산 등 미 경제에도 부담이다. 35세 이하의 주택 보유비중은 36.2%로 2004년 43.6%보다 무려 7%포인트 이상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존 학자금 갚기에도 급급한 판에 또 다른 빚을 일으켜 주택을 마련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월가의 채권 왕인 빌 그로스 핌코 최고운영책임자(COO), 제프리 군드라흐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 등이 미 경제가 저성장·저소비 등을 특징으로 하는 '뉴 노멀(New Normal)' 국면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도 학자금 대출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퇴직하는데 청년들이 소비를 줄이면 미 경제도 장기간 저성장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 학자금 대출 증가는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계 인종이나 저소득층의 신분 상승 기회의 박탈로 이어지고 있다. 미 진보센터 조사에 따르면 백인 대학생은 16%만 학자금 빚을 진 반면 흑인은 27%에 이르렀다. 대학교를 중도 사퇴한 백인의 경우 43%만 학자금 부담을 이유로 든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은 각각 69%, 74%에 달한다.

학자금 대출, 사회·경제 타격 커

학자금 대출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충격은 이미 남의 일이 아니다. 올해 4월 현재 한국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12조3,000억원으로 9년 만에 24배로 늘었다. 특히 6개월 이상 연체로 신용유의자가 된 학생은 4만여명으로 2007년 이후 7년 만에 11배나 늘었다. 이들 대다수는 중산층 이하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건 굳이 통계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도 대학생들의 과도한 빚이 개인은 물론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국면에 이른 것이다. 오히려 부채 증가 속도로 봐서는 조만간 미국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닥칠 수도 있다. 이미 '88만원 세대'로 비유되는 상당수 사회 초년병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가운데 학자금 대출 부담 때문에 결혼을 늦추고 집 살 생각은 아예 포기한 지 오래다.

특히 미국이야 세대·빈부 격차가 인종 문제나 이민 이슈 등의 뒤에 숨어 희석되는 측면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곧바로 사회 갈등으로 귀결된다. 지난 6·4 지방선거도 세대 갈등의 장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기존 지역 구도의 퇴색은 긍정적이지만 세대 갈등은 계층 갈등과 맞물려 앞으로 더 증폭될 게 뻔하다.



최근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등을 두고 극도의 국론 분열 양상을 보인 것도 양극화로 사회 갈등의 완충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 증가도 결국 가계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하고 양극화가 심화된 데서 기인한다. 계층 간 사다리가 사라진 나라에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의 성장 지상주의 본능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고환율 정책에는 일정한 거리를 뒀지만 전반적으로 규제 완화, 감세 등을 통해 소득 양극화, 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 실증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파산이 난 '트리클 다운(낙수 효과)' 논리의 재탕에 다름 아니다.

반짝 성장 대책보단 갈등 해결 중점을



우리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빠진 이유는 기업은 현금을 쌓아두고 가계는 실질 소득이 늘지 않으면서 소비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내수가 둔화되니 기업 투자나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수 없다. 차기 경제팀이 우리 경제의 발전 패러다임이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점을 무시한 채 정반대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경기를 살리자는 것은 전형적인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은 그토록 강조하면서 가계에는 빚을 내 경기를 떠받치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차기 경제팀이 부양책이 임기 내 성장률 반짝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중산층 붕괴 가속화로 사회 갈등만 더 부추기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최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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