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가계빚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에 대한 해외의 시각 또한 예사롭지 않다. 미국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3월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가계부채 위험국'으로 지목했다. 가계가 1년 동안 번 돈에 비해 빚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자금순환표상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지난해 이미 163%를 넘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113%는 물론 금융위기 위험국가인 스페인의 130%도 훌쩍 넘어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수준 아닌가.
그런데도 정부는 잇단 금리 인하와 부양책으로 가계부채 급증을 외려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하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리 인하가 자산시장 연착륙을 돕고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했다는 관점까지 내비칠 정도로 자신만만하니 그럴만도 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가계부채 문제가 시스템 리스크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자신감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기준 전체 부채의 70%가량이 소득 상위 40%에 집중돼 있고 고정금리 및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도 각각 25% 안팎에 이를 정도로 개선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정부의 낙관론은 부동산 경기와 저금리 중 하나만 무너져도 버틸 수 없을 만큼 취약한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이미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집값 폭락과 고금리의 극심한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나. 당시 한국 정부나 1980년대 버블 붕괴의 벼랑 끝에 섰던 일본 정부나 최후의 순간까지 빚더미가 두렵지 않다고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빚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특히 지금 정부가 경계해야 할 것은 3월 가계빚이 4조원 느는 동안 대기업 대출은 4조2,000억원이나 줄었다는 부분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멈추고 있는데 가계부채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가계부채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