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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1월 27일] 일하는 빈곤층 늘고 있다

모두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고 있을 때 홀로 ‘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외쳤던 사람이 있다. 박노자 교수였다. 순간 무릎을 쳤고 이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식인의 사명인 의제설정 능력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렷다. 모두들 저쪽을 쳐다보고 있을 때 홀로 이쪽도 좀 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와 혜안. 불황을 맞아 모든 언론이 기업의 고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렵기는 대기업ㆍ중소기업 가릴 계제가 아닌 듯하다. 산업분야에 따라 호ㆍ불황이 갈리던 것도 옛말이다. 금융ㆍ건설에 이어 장기호황을 누리던 조선마저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왜곡된 노동환경이 불안감 키워 와중에 노동자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 테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고통을 전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안타깝다. 겨울이 오고 불황이 닥치면 모든 언론이 약속이나 한 듯 찾아나서는 데가 있기는 하다. 거리 노숙인의 일그러진 형상을 사진에 담거나 달동네를 스케치하는 식이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정작 그들의 내재화된 고통은 외면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의 고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계속 가난하기만 한 사람들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이른바 ‘워킹 푸어(Working Poor)’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상시적 고용불안정성에 시달리는 사람들, 편의점이나 주유소 등의 아르바이트생들, 소규모 식당이나 슈퍼마켓의 파트타이머들, 건설현장의 막일꾼, 용역회사에 목을 맨 사람들, 인력시장을 전전하는 하루살이 인생들…. 워킹 푸어, 즉 일하는 빈곤층이 늘고 있어 문제다. 일을 하면서도 희망은 작아지고 오히려 불안만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행복 대신 고통을 키우도록 설계된 왜곡된 노동환경 탓이다. 그간 주요한 사회 의제였던 ‘비정규직’ 문제에 새로운 개념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둘은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른 문제다. 워킹 푸어는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이기도 하다. 경제가 불황이고 경기가 침체하면 일차적으로 타격을 받는 건 기업들이다. 그 타격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이된다. 정규직도 예외는 아니다. 임금협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되고 감원과 구조조정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 그래도 정규직은 나은 편이다. 비정규직의 경우 숨조차 내쉬기 힘들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세라, 비가 오면 물살에 휩쓸릴세라 오로지 사용자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 있다지만 종래 그 법은 비정규직을 해고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일 때가 더 많다. 죄지은 죄인이 따로 없다. 벙어리 냉가슴이다. 가슴앓이가 심해지면 중병이 된다. 병이 들면 그나마도 다닐 수 없다. 정규직ㆍ비정규직할 것 없이 죄다 워킹 푸어가 돼가는 현실이다. 죽어라 일을 해도 경제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불안심리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용 안정성이라는 말은 언어의 유희이거나 관념적 사치일 뿐이다. 오로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급선무다. 와중에 정부는 점잖게 권유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합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고통이 아니라 행복을 준데도 받아 안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더 이상 어쩌고 저쩌고할 것도 없다. 살아내는 게 유일한 목적일 뿐이다. 청년실업 방치해선 희망 없어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젊은이들이라는 데 있다. 일명 ‘프리터’니, ‘캥거루’니 하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 취업전쟁에 내몰려 치열한 전투를 치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이제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취업을 준비할 여력이 없다. 그날그날 버티고 뭉개면 그만이라는 자포자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시비하지 마라.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다”가 그들의 짧은 변명이자 대답이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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