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회복의 첫걸음인가,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인가.'
그리스 의회가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구제금융을 위해 요구한 추가 긴축안을 통과시킨 12일(현지시간) 수도 아테네 중심가는 곳곳에서 피어 오른 불길에 휩싸였다.
이날 오후6시께 국회의사당 앞 산티그마광장에 모인 약 10만명의 시위대는 당초 '강도들'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북을 울리는 수준의 평화적 시위를 벌였으나 이 중 일부가 화염병을 던지고 상점을 약탈하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그리스 일간 카티메리니와 블룸버그ㆍ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불에 타 파손된 건물은 그리스 현대사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는 아티코극장을 비롯해 17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위대는 외국 기업과 은행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글로벌 커피체인인 스타벅스 매장과 그리스 국립은행, 유로뱅크 지점 등을 공격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발포한 최루탄과 화재 등의 영향으로 이날 밤새 아테네의 도심 기능은 마비됐으며 경찰 포함 70여명이 병원에 후송됐고 50여명 이상의 시위대가 체포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폭동은 그리스의 앞날이 여전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고 지적했다.
실제 그리스는 이번 긴축안 통과에도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국채교환 프로그램(PSI) 협상, 오는 4월 총선 등 곳곳에 널린 지뢰밭을 건너야 한다. 더구나 "이번 긴축안 수용은 그리스가 6개월의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할 뿐 장기적인 효과는 없을 것(블룸버그)"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1차 분수령=당장 15일 열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회의가 그리스의 운명을 가를 1차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의회는 이날 EU가 요구한 ▦최저임금 22% 삭감 ▦3년간 공무원 1만5,000명 감원 ▦연금 삭감 ▦33억유로 추가 긴축 등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만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1,300억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기금을 EU가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구제금융을 주도해온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약속만 남발하는 그리스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회의 결과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은 구제금융기금을 제3자의 특별계좌에 넣어 두고 긴축이행 결과에 따라 조금씩 인출을 허용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PSI 민간채권단 참여 여부도 미지수=EU가 구제금융을 승인하더라도 변수는 남아 있다. 17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PSI에 얼마나 많은 민간채권단이 참여할지도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기본적으로 PSI는 채권단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해 헤지펀드 등 일부 채권단이 국채교환을 거부할 경우 1,000억유로의 부채를 탕감하겠다는 그리스 정부의 목표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채권단 참여율이 90%는 돼야 PSI가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WSJ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민간채권단의 PSI 참여를 강제화하는 입법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경우 결론적으로 구제금융이 지연되는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4월 총선도 중대변수=이르면 4월 실시되는 총선도 중대변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추가 긴축에 대한 그리스인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총선 결과에 따라 긴축을 재논의하자는 요구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력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안도니스 사마라스 신민당 당수는 "총선 후 긴축안을 다시 논의할 수도 있다"고 밝혀 파장을 예고했다. 독일 등은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긴축은 실행할 것이라는 서면확약을 그리스 1ㆍ2당인 사회당과 신민당에 요구하고 있다.
이 밖에 PSI로 170억유로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그리스 은행이 부실을 털고 유럽 규제당국이 요구하는 재정건전성 요건을 7월까지 충족할 수 있을지도 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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