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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돈을 준 정치인으로 보이는 메모를 남기고 자살하면서 불법정치자금·불법대선자금 문제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5공 정치자금' '한보사태' '차떼기' 사건 등 불법정치자금 문제는 아직도 고리를 끊지 못하고 이어지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2004년 이른바 오세훈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자금법이 개정됐지만 또 터졌다.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미국은 제한을 풀되 유권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모든 자금의 출처를 공개한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독일은 지나친 지출을 막는 데 초점을 두고 국고보조금과 시민후원금으로 충당하게 한다. 이번 사태로 불법정치자금 근절을 위해 어떻게 관련법과 제도를 수술해야 할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전용주 동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비현실적 現 제도 '검은돈 유통' 조장
정치자금법 손질해 투명성 확보해야
10여년 전 '차떼기' 사건으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 신뢰가 끝없이 추락했었다. 이를 모면하고자 당시 정치인들은 제도를 바꿨다. 현재 정치자금 제도의 골격을 이루는 이른바 '오세훈법'이다. 법인과 단체 기부를 금지했고 정당후원회를 없앴다. 모금과 기부 한도도 낮췄다. 그러나 이 제도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정치인들에게 부메랑이 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제 불신을 넘어 냉소와 무관심이 팽배해지고 있다.
오세훈법은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 없는 사회는 상상할 수 없으며 정치는 적정한 수준의 자금을 필요로 한다. 당시 정치인들은 이런 당연한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거센 비난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해 결과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모금 한도가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 후보자는 경선과 본선에서 선거비용제한액의 5%만을 모을 수 있다. 물론 선거 후 득표율에 따라 사용한 금액을 돌려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후 보전이며 당장 선거에서 투입할 돈이 필요하다. 둘째, 정치인 중 일부만 합법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나마 자치단체장은 선거비용제한액의 절반 정도를 합법적으로 모금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그 기회마저 봉쇄돼 있다. 셋째, 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 밖에서 자금이 불법적으로 유통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선 과정이 그렇다. 향후 경선이 확대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제도의 불완전함은 음지에서의 자금 유통과 부정부패를 조장한다. 쪼개기 기부, 출판기념회 등 비정상적 자금 모금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상적 통로를 봉쇄하면 고액 후원자의 유혹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합법적으로 모금할 수 있는 금액의 한도를 현실화해줘야 한다. 경선과정에서도 적정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도 모금의 합법적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 정치자금 기부자가 소수라는 현실을 감안해 법인과 단체의 기부 허용도 고려할 만하다. 물론 거액의 기부가 가능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시민단체나 노조와의 형평성을 위해 기부 한도를 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정당후원회를 부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거액 기부는 정당후원회에, 소액 기부는 정치인 개인에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액기부자와 정치인 간 부적절한 관계 형성 가능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제도 변화는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와 함께 가야 한다. 현행법에서의 투명성 확보 장치는 매우 부실하다. 회계 자료를 3개월만 공개하도록 하고 있고 고액기부자의 신상공개 의무조항도 허점투성이다. 자료를 항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치인이 누구에게서 얼마나 받았는지, 그리고 어디에 지출했는지를 '감시'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제도 변경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불신 극복, 그리고 동의가 먼저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설득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현 제도에서 계속 예비범법자로 남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결국 정치인 자신의 몫이다.
●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역구 위주 선거제, 조직동원 불가피
비례대표 늘려 정치자금 수요 줄일 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국무총리는 사퇴했고 경남지사는 검찰에 소환됐다. 파장이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여야를 불문하고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광범한 수사가 '정치개혁의 이름'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성완종 파문이 우리 사회 전반, 특히 정치권과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줄어드는 계기로 승화됐으면 하는 것이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지금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두 경우는 모두 '미신고 불법 정치자금'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자금법을 중심으로 제도적 개선책을 모색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불법 정치자금을 뿌리 뽑으려면 정치자금제도 하나만 가지고는 한계가 분명하다. 정치자금제도는 선거제도·정당제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자금제도는 선거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통상 정치관계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선거법·정당법, 그리고 정치자금법이다. 현재 활동 중인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이 세 가지 법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법이다. 어떤 선거제도를 택하느냐에 따라 정치자금과 정당의 제도와 관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대부분 지역구 단위에서 한 명씩 선출된다. 일부 비례대표가 있지만 전체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당보다는 후보중심의 선거운동이 강조되는 제도다.
후보 입장에서 보면 선거를 위해서 지역 선거구 단위의 조직이 필요하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을 운영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예전에 지구당, 지금 당원협의회 또는 지역위원회라 불리는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은 대부분 지역 선거구 위원장이 부담한다. 대부분 자금은 개인적으로 조달된다고 알려져 있다. 선거구 단위조직의 운영은 평시에도 필요하지만 선거 때는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평상시보다 선거 때 정치자금도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는 개별 정치인의 정치자금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치자금제도를 통해 정치자금 모금과 사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인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개별 정치인의 정치자금 수요를 줄일 수 없다. 선거제도가 기본적으로 선거구 단위조직을 필요로 하며 어떤 이름으로 부르던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주목 받는 것이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중심의 선거운동을 필요로 한다. 유권자들이 정당에 던진 표에 따라 정당별 당선자 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개별 정치인의 정치자금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물론 비례대표제는 정당중심의 선거운동을 요구하는 선거제도라 정당의 정치자금수요를 증가시키는 측면은 있다. 불법 정치자금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개별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정당이라는 조직의 틀을 통해 통제하고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선거제도 개선을 통해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이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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