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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못 살리고 은행도 손실… 비극 부른 '관치 구조조정'

■ [포커스] ‘태풍의 눈’ 경남기업 상장폐지

금융당국 밀실관행 개선위해 책임·투명성 확보장치 마련을

"당국 팔 비틀고 산은 앞장… 제2 경남기업 양산 불가피"


15일 상장폐지되는 경남기업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은행권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주도로 이뤄지던 그간의 관치 구조조정 관행이 냉혹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무리한 기업 살리기가 결국은 기업 채권단, 금융당국 모두의 비극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3년 말 경남기업의 3차 구조조정 및 출자전환 과정에는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외압 논란까지 불거진 바 있어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로서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는 금이 간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시화를 통해 채권단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번 경남기업 사태를 계기로 밀실에서 이뤄지던 은밀한 기업 구조조정 관행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무엇보다 금융당국 스스로 '경남기업 트라우마'에 빠져 앞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구조조정이 발달하지 못한 국내 현실에서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은 과도기적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라면서도 "구조조정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금융당국이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경남기업이 상장폐지를 앞둔 가운데 경남기업에 출자전환한 은행들은 정리매매를 통해 투자한 금액 대부분을 허공에 날리고 있다. 채권단은 지난해 3월 경남기업 3차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총 903억원을 출자전환했는데 약 800억원 이상의 손실이 생기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주요 은행별 주식 매매 손실규모를 보면 수출입은행 201억원, 신한은행 129억1,600만원, 산업은행 127억6,000만원, 농협은행 57억7,000만원, 국민은행 50억원, 우리은행 31억원 등이다.

여기에 은행들은 경남기업에 대출해준 금액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상당 규모의 충당금도 쌓고 있다. 경남기업에 대한 은행권 익스포저는 1조원에 달하며 가장 규모가 큰 수출입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과 올 3월에 걸쳐 총 1,705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다. 여기에 경남기업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서 협력업체들도 약 4,000억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기업에 대한 당국과 채권단의 구조조정 판단이 모호했던 부분은 이 같은 손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 크게 한다. 경남기업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과 모 회계법인은 지난해 경남기업 실사 이후 대주주 지분에 대한 무상감자와 채권단 주도의 기업경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금융감독원과의 협의 끝에 무상감자 없는 대규모 출자전환이 이뤄졌고 결국 파국을 맞았다.



금감원은 당시 경남기업이 자본잠식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상감자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감사원 등 사정당국은 국회 정무위원이었던 성완종 회장과 금융당국 고위직들의 외압이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경남기업 구조조정 과정은 이 밖에도 기업의 자본잠식 등의 상황과 관련해 주채권은행과 다른 채권은행들 사이에서 정보조차 제대로 교류되지 않는 등 최근까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시장 논리 외에 다른 가치가 개입돼 있다 보니 누구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와 학계에서는 이 같은 불투명한 방식의 기업 구조조정이 결국 '제2의 경남기업'과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국내 시장에 정착됐고 실제 상당한 성과도 있었으나 곪은 상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임원은 "금융당국이 팔을 비틀고, 산업은행이 앞장서고, 다른 채권은행들은 틈만 나면 빠져나가려 하는 악순환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며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이 당장 효율적일 수 있으나 특정 주체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단과 기업과의 약정 내용, 이행점검 내용 등에 대한 공시 절차를 지금보다 대폭 강화해 워크아웃 절차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구제 절차도 지금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포기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 정보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와 채권단의 책임성 강화 절차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경남기업 구조조정 과정 등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보완할 방안이 올해 말 금융당국이 재입법할 기촉법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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