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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 회장] 1. 시한부 인생의 충격
입력2003-03-30 00:00:00
수정
2003.03.30 00:00:00
임웅재 기자
이번 주부터 `지역경제ㆍ기획면`을 통해 나춘호 예림당 회장의 `나의 일 나의 인생`을 연재합니다. 필자인 나춘호 회장은 맨주먹으로 오늘날의 예림당을 일군 귀감이 될만한 출판인이자 경제인입니다. 대한출판협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편집자)
수술 받은 지 3일째 되는 아침이었다. 간호사실에서 체중을 재고 돌아오는데 주치의 한덕종 박사가 병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웬일이십니까?”
“아, 예. 저 이런 말씀 드려야 좋을지….”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정밀검사를 했더니 물혹 세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쩌면 재수술을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순간 나는 방 전체가 한 바퀴 빙글 돌아가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럼, 췌장을 완전히 들어내는 겁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당장은 아니고 한 3년 정도는 재발의 우려가 없을 겁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인데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나는 간신히 태연한 척 말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간 뒤 병실은 잠시 조용했다. 나는 머리 속이 텅 빈 듯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 3년 동안은 괜찮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아들 성훈이가 말했다. 아내는 말이 없었다. 문득 지나온 삶의 모습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여러 모습에서 고향의 옛집이며 생전의 부모님 모습들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영화의 장면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한동안이나 미루고 있던 수술을 받은 것은 1999년 7월 28일이었다. 췌장에 생겼다는 물혹을 떼어내는 수술이었다. 담당 의사인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 한덕종 박사는 수술만 하면 괜찮다고 했다. 수술 후 2~3개월만 요양하면 전처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들 여름 휴가를 떠나고 주변이 한적해지는 기간을 이용하여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췌장 앞부분 절반을 제거하고 끝부분을 접합하는 수술은 장장 12시간이나 걸렸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모두들 수술이 잘 끝났다고 했다. 이제 죽으면 죽었지 두 번 다시는 이런 수술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안도했다. 이제 2~3개월만 참으면 된다 싶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벌여 놓은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재수술이니 재발이니 하는 말을 들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인생을 걸고 일구어 온 예림당이며 출판계를 위해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출판문화협회 회장직까지 연임했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현실을 피해 갈 수도 없었다. `시한부 생명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제 내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대로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반발도 일었다.
조직배양 검사결과 재발의 위험이 약간은 있는 것으로 판정됐다. 그런데 그 이후 정기 종합검사에서 단 한 번도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담당 의사도 재발의 위험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때 그 순간의 절박하고 허탈했던 심정을 생각하면 3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수술 후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가 주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사회와 국가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에서 `성공한 경제인이자 출판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 삶의 행적을 연재해 보자고 제의했을 때 거절하고 망설이다가 끝내 응낙한 것도 수술 후 변화된 내 모습이 아닐까 싶다. 비록 파란만장 한 삶도 아니고 위대한 업적도 남긴 바 없지만 내 삶이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임웅재기자 jael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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