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수천억 회사 5000만원에 넘겼더니…
자산 수천억 업체 5000만원에 경영권 넘겼더니 2년만에 도산어이없는 매각에 근로자·채권자들 큰 피해구미공단 '메르디안 솔라…'인수자 부도내고 잠적해버려매각작업 참여자도 파악안돼
구미=이현종기자ldhjj13@sed.co.kr
한 때는 대기업의 주력 공장이었고 수 천억원대의 자산을 보유한 회사가 단돈 5,000만원에 매각된 후 2년여 만에 도산해 근로자들과 채권자들만 막대한 피해를 떠안은 사건이 경북 구미공단에서 발생했다.
문제의 회사는 TV브라운관을 전문 생산하는 메르디안 솔라 앤 디스플레이. 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 인동대교 입구 대로변에 위치한 이 회사는 23만3,000㎥(7만평)의 광대한 부지에 한때 7,000여명이 근무했다.
17일 구미지역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곳에서 제조한 브라운관 TV가 세계 각지로 수출됐지만 평판TV등장으로 쇠락을 거듭했다. 지난 2006년 모기업이 손을 떼고 다국적 기업인 필립스사가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사명도 필립스 디스플레이가 됐다.
이것도 잠시. 2007년 필립스마저도 경영권에서 손을 떼면서 채권단이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09년 홍콩 법인인 메르디안 솔라 앤 디스플레이라는 회사가 매수자로 나타났다.
채권단은 이 회사를 대표한 크리스 박(53)이라는 인물과 협상을 벌인 결과 구미공장을 포함한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의 해외공장 3곳을 모두 인수하는 조건으로 3,700만 달러에 매각 키로 합의했다.
채권단은 계약금으로 단돈 5,000만원만 받은 상태에서 2009년 7월 일단 구미공장에 관한 모든 권리(경영권포함)를 인도하는 이해할 수 없는 매각이 이뤄졌다. 지난 2001년 부채가 1조5,000억 원에 달했지만 매각 당시까지 약 9,000억원을 상환할 정도로 구미공장이 흑자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 회사 인수자인 박사장은 잔금을 지불치 않은 채 대주주로서 전횡을 행사했다. 몇 개월 뒤 10억원을 추가로 인수자금으로 납입했지만, 회사 돈을 납입한 것이라고 근로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이후 더 이상의 인수자금을 납입하지 않은 박사장은 경영을 맡은 지 2년여만인 지난해 11월 29일 부도를 낸 후 잠적했다. 이어 12월 9일 단독으로 전격 폐업신고를 했다. 지난해 1,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회생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온 700여명의 근로자들은 무시됐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박 사장을 처벌할 근거가 없어 시민들이 공분하고 있다. 단지 박사장과 또 다른 최고경영자였던 박 모씨간에 쌍방 고소사건이 접수돼 검찰의 수사결과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구미시민과 근로자들은 “박 사장이 애초부터 먹튀를 목적으로 했다”면서 “단돈 5,000만원에 경영권까지 넘겨준 채권사 당사자를 찾아 경위를 밝혀야 하며 잘못이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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