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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宮, 정치적 이상·권력 욕망 혼재된 곳

■ 궁궐, 조선을 말하다 (조재모 지음, 아트북스 펴냄)


조선의 왕궁 중 하나인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프로젝트'전은 개막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30만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을 모았다. 조선 왕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궁궐 전각을 현대미술과 버무려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 매력적이었다는 평가다. 이 뿐 아니라 문화재청이 진행하는 창덕궁 후원 달빛기행이나 궁궐 인문학 강좌 등은 항상 인기다. 이런 경향은 궁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궁궐은 거처로써의 건축물을 넘어 전제왕권 그 자체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경북대 건축학과 교수인 저자는 현대인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가고 있는 이들 궁궐 건축을 두고 조선의 제도와 이념이 궁궐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조선의 가장 대표적 궁인 경복궁과 창덕궁은 닮은 듯 하지만 다른 꼴이다. 법궁인 경복궁이 상하 위계가 분명한 중국식 규범에 충실하다면 이궁(離宮)인 창덕궁은 병렬식 배치와 아기자기한 구성, 주변 자연과 어울리는 풍광을 자랑한다. 하지만 정전ㆍ편전ㆍ침전을 서로 가깝게 연결해 왕의 동선을 배려한 것이나, 외전과 내전의 공간을 구분하고, 의식의 진행에 필요한 몇 겹의 마당을 둔 것은 공통적이다.

세종대왕은 '유교적 예치 공간'으로 궁궐을 인식해 경복궁에 변화를 불러왔다. 경복궁 내에 동궁 전각을 세우고 문소전 건립계획에 관여한 개조 작업 등은 세종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궁궐이라는 공간을 일치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경복궁의 위용은 세종 때 완성됐다.



이와 달리 연산군, 광해군, 흥선대원군 등은 무제한적 권력을 휘둘러 대규모 건축공사를 단행함으로써 권력 지향적 욕망을 드러냈다. 연산군은 창덕궁 후원의 서총대 공사를, 광해군은 인경궁과 경희궁의 공사를 단행했고,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이래 270여년간 공터로 남아있던 경복궁의 중건을 꾀했다.

그런가 하면 궁궐에서는 자연인으로서 임금과 공인으로서 임금의 갈등도 엿볼 수 있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할지 국왕으로서 예법을 따를지에 관한 문제가 늘 첨예했는데, 영조는 생모 숙빈이 정비(正妃)가 아니어서 종묘에 모실 수 없는 처지였기에 법도의 틀을 깨고 어머니를 위한 육상궁을 두고 종종 출입했다. 그의 손자인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을 세우고, 자주 참배하기 위해 창경궁 담장에 월근문이라는 별도의 문을 내기도 했다.

책은 '궁궐, 그 복잡한 얼개''규범과 관습의 타협, 궁궐 건축''궁궐을 뒤흔든 욕망'의 3부로 크게 나뉘어 구중심처(九重深處)를 속속들이 파고든다.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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