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대 고액자산가 김강호(가명)씨는 후강퉁 시행에 맞춰 성인이 된 자녀 이름으로 해외 주식계좌를 만들어줬다. 지난 1990년대 삼성전자·현대차·POSCO 등 국내 대형주의 주가가 불과 10~20년 만에 큰 폭으로 오른 점을 감안할 때 중국 본토 주식 역시 장기간 넣어둔다면 훗날 자녀들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김씨는 증여세를 내고 자녀 이름의 계좌로 2,000만원을 넣은 후 중국 내수에서 1위를 하고 있는 기업들을 투자하기 위해 관련 종목에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국 증시로 통하는 문이 열린 17일 국내 증권사들의 영업 창구에는 후강퉁 투자에 대해 묻는 고객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김씨처럼 자녀에게 성장 잠재력이 큰 중국기업의 주식을 물려주기 위해 목돈을 예치하는 거액 자산가부터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중국 본토 A주에 투자하는 방법을 묻는 일반 투자자들까지 후강퉁 문의 전화량이 평소 때보다 크게 늘었다. 조지연 신한금융투자 글로벌사업부 해외주식투자팀장은 "오전 중 신한금융투자를 통한 후강퉁 거래금액만 이미 지난 금요일 홍콩시장 거래금액의 5배를 넘어섰다"면서 "후강퉁 관련 문의 전화도 평소보다 7~8배가량 폭주했다"고 말했다.
후강퉁 시행 첫날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투자자는 고액자산가들이었다. 이날 고액자산가들의 금융상품 상담 창구인 유안타증권W프레스티지 강북센터에는 PB들이 10건 이상의 후강퉁 투자 상담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고액자산가들은 주로 중국 내수 소비재 종목을 장기 투자할 수 있는 투자 전략에 대해 많이 물었다.
정윤성 유안타증권 W프레스티지 강북센터 PB는 "지난주부터 고액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후강퉁제도에 관련된 문의가 많이 왔고 내수소비재 중 중국 내 1위 기업들, 중국 정부 정책 수혜주들, 엔터테인먼트업체들에 대한 투자 문의가 많았다"며 "대부분 짧게 투자하기보다는 목돈을 오래 넣어두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 종목에 대해서도 국내 종목 투자처럼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랩 상품에 가입하길 원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중국 본토 주식을 거래할 때 세금은 어떻게 되는지, 주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추천 종목은 무엇인지를 묻는 문의가 많았다. 후강퉁 시행에 맞춰 지난주부터 해외 주식 계좌 개설 서비스를 시작했던 유안타증권에는 1주일 동안 700여건의 해외 주식계좌 개설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날 신한금융투자 창구를 통해 국내 투자자들이 매수한 중국 본토 주식을 살펴보면 중국국제여행사, 항공동력(600893), 상하이자동차, 상하이자화, 칭다오하이얼 등의 순이었다.
후강퉁의 열기가 고액자산가 외에 일반투자자에게 퍼지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투자자들은 중국 본토 주식 투자의 경우 주식거래 단위(100주)가 크고 환차손 등의 우려까지 있어 우선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 뒤 투자에 나선다는 입장이 많았다. 실제 이날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증권사 PB센터에는 후강퉁 관련 문의가 많았지만 일반지점에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국내 투자자의 후강퉁 거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국내 증권사를 통한 위안화 환전(11월10~17일) 규모도 30억원 선을 넘지 않았다.
한편 후강퉁 시행 첫날 국내 증시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코스피지수는 전거래일보다 0.08%(1.51포인트) 떨어진 1,943.63포인트에 거래를 마감했다.
외국인은 이날 321억원 순매도했지만 2,939억원 매도우위를 보였던 전거래일보다 낙폭을 줄였다.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이탈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가 1992년 1월 외국인에게 개방했을 때도 지수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면서 "후강퉁이 시행된다고 해서 국내 증시에서 단기적으로 외국인의 급격한 자금 이탈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