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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 피해 구제 범위 넓어진다

"금융사에 이용자 보호 책임… 파밍사기 피해 배상해야" 판결<br>보안 주의 의무 쟁점 떠올라<br>유사소송 조짐에 금융권 긴장

서울 송파경찰서 관계자가 지난해 3월 개인금융정보를 빼내 예금을 무단 인출한 사기단을 검거한 뒤 증거물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고객이 당한 전자금융 사기에 은행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피해구제 범위가 더욱 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경제DB

최근 고객이 당한 '파밍(pharmning)'사기에 은행도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금융계와 법조계가 술렁거리고 있다. 금융계는 유사소송으로 잇따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장하는 모습이며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금융사기가 발생했을 때 금융회사에게 이용자 보호 책임이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라는 점에서 여파가 만만찮을 전망이다. 점차 금융사기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데다 관련 법 역시 피해자한테만 책임을 부담시키지 않는 쪽으로 개정되는 등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있는 점이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전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대부분 '고객의 중과실'을 인정해 은행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상 이용자의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책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자의 부담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이다. 간혹 금융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오기는 했지만 항소심에서 번번히 "고객 잘못"을 이유로 판결이 뒤집혔다.

그러나 지난 19일 공개된 의정부 지법 판결은 상황이 다르다. 의정부지법 민사4단독 임수연 판사는 파밍 사기로 1억7,400만원 피해를 입은 정모씨가 국민은행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민은행은 피해의 30%인 538만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지난 5월 개정돼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접근매체 이용 사고'도 금융회사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책임 조문을 피해자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판시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소송에서 고객을 대리한 홍석인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금융사기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이용자 보호를 위해 금융회사의 책임이 면해질 수만은 없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판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판결 내용을 구체적으로 봐도 재판부는 공인인증서 같은 접근 매체의 '위ㆍ변조'개념을 넓게 해석했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공인인증서 등 접근매체가 ▦위조 또는 변조돼 사고가 발생했을 때 ▦ 계약체결, 돈의 전자 전송이나 처리과정에서 사고가 생겼을 때 금융회사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정하고 있다.

결국 고객으로서는 파밍 사기로 공인인증서가 위ㆍ변조됐다는 점을 먼저 입증해야 금융회사의 피해 책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셈이었다.

재판부는 "위조 또는 변조의 개념을 형법처럼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고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위ㆍ변조 개념을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의정부지법 판결로 금융사기 피해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환급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금융사기 피해 환급비율은 전체 액수의 20% 선에 그친다. 지난 2011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피싱 사기 피해자가 돌려 받은 환급은 모두 3만3,000건, 총 336억원이다. 이는 1인당 평균 216만원이며, 피해자들이 신고한 총 피해액 1,543억원의 21.7%에 그친다.

환급 비율이 낮은 이유는 사기 신고 이후 금융사기에 이용된 통장을 찾더라도 피해금액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별도 소송 없이 보이스피싱 대출사기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전기통신 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개정안을 심의ㆍ의결했지만 이도 통장에 돈이 남아있을 때의 얘기다.

홍 변호사는 "은행의 책임이 일부 인정되면서 피해자 구제 범위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이번 판결은 공인인증서 같은 접근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금융 과정상 사고에 관련된 것이라 보이스피싱, 스미싱 같은 금융사기에는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금융사기 피해 사례가 많은 만큼 앞으로 유사 소송이 쏟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알려진 소송은 의정부지법 사건 외에 민모씨 등 4명이 신한은행, 농협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낸 1억7,2000만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소송을 대리하는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의정부지법 판결은) 생각보다 금융회사의 책임이 낮게 인정됐다"며 "재판에서 금융회사가 사고방지에 충분한 보안조치를 다했는지 여부 등을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기 소송에서도 '옥션'이나 '싸이월드-네이트' 개인정보 유출 소송처럼 금융기관의 보안 주의의무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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