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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는 역대 정권 때마다 이른바 코드인사, 논공행상 인사로 파행을 겪은 단골 부처다. 대통령은 본인의 국정철학에 맞거나 정권에 공이 있는 인사를 문화부 장관이나 산하 기관장에 배치했지만 태생적으로 자율성과 창의성을 근간으로 하는 문화계와는 잦은 충돌을 빚었고 이는 정권이 바뀌면서 '피의 인사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재연됐다.
최근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의 중심에 섰던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청와대 비선 실세 인사개입 발언의 이면에도 이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게 문화부 안팎의 분석이다.
사실 '문화융성'을 국정지표의 하나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과거 정권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좌파도 우파도 아닌 문체부 내부출신인 유진룡씨를 내세워 자율성에 근간을 둔 문화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자 했다. 과거 정권이 자기 색깔이나 정권에 공이 큰 인사를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하던 관례에서 벗어나고자 정권 사상 처음으로 문체부 내부에서 수장을 발탁한 것이다. 1기 내각이었던 유 장관은 지난 2013년 3월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산하 기관장의 남은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께부터 청와대는 국정철학 공유 및 논공행상의 대상으로 문화부 및 산하기관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했고 이후 독립성을 강조한 유 전 장관과 수차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지애 아리랑TV 사장이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올해 2월 사퇴했고 최근에는 홍상표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임기가 남았지만 사의를 표명했다. 결국 유 장관은 7월 면직됐고 김종덕 후임 장관이 들어서면서 10월에는 문체부 1급 간부들이 무더기 퇴출되는 사태를 맞았다.
'문화융성'을 표방하며 출발했지만 박근혜 정부도 매 정권마다 따라다닌 코드와 논공행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부는 문화부를 정권 홍보나 지원용으로 적극 활용한 측면이 강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인 박지원씨를 장관으로 발탁했고 문화부의 역할과 권한을 늘렸다. 김 전 대통령은 문화부를 통해 사회 전반의 보수 분위기를 진보 쪽으로 바꾸는 데 활용했다. 50여개 소속·산하기관과 파생된 조직·기금은 이를 위한 전위대이자 지지세력 확보수단이었다. 이러한 기조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 지속된다.
10년의 진보정권이 끝나고 이명박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화부 장관을 비롯한 산하기관 인사들이 노골적으로 보수 인사들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첫 장관인 유인촌씨가 '코드인사' '숙청' 등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대대적인 산하기관장 교체에 나선 것이다. 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권은 취향이 다른 문화계 인사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그 절정은 이명박 정권이었다. 앞선 10년 진보정권과 차별을 위해서 마구잡이 칼을 휘둘렀고 이는 집권 5년 내내 후유증을 남겼다.
유진룡 전 장관의 후임으로 7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신인 정성근씨가 발탁된 것은 다시 문화부 장관에 코드·논공행상 인사가 돌아온 것을 의미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정씨는 도덕성 문제로 국회 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결국 다소 무색무취의 김종덕 장관이 낙점됐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기조에 따라 현재의 김종덕 장관 체제가 과도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지세 확대와 논공행상용 자리를 위해서는 문화부를 확실히 장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진정한 문화융성을 위해서는 문화계 인사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북돋워 줘야 한다"며 "이는 정권이 권력행사의 욕심을 버릴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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