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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입력2003-10-24 00:00:00
수정
2003.10.24 00:00:00
“엄마 강물이 얼어요! 추워요!”
어린 도즈가 창녀인 엄마에게, 뛰어난 경극 배우가 된 데이가 한 때는 창녀였던 쥬산의 품에 안겨, 환각 속에서 읊조리는 말이다. 원래 데이, 도즈는 6개의 손가락을 가진 소년으로 경극 수련원 입문을 위하여, 그의 엄마에게 손가락을 잘린다. 그리고, 그 때는 청나라 말기, 격동의 시기, 그 초입 어느 겨울이었다. 홍위병 출신이었던 첸 카이거 감독이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듯, 조심스럽게 격정적으로 만들었다던 영화, `패왕별희`의 시작이기도 하다.
`하늘이 그를 시기하여, 유방의 함정에 걸려서 죽은 초왕, 항우`와 그의 정실부인, 우희의 그 처연한 죽음이 훗날, `경극(북경 오페라)`을 통하여 오랫동안 전설로 전하고, 몽고의 후예가 세운 청 왕조 300년과 인민혁명 국가 40년을 지나, 여류작가, 이벽화는 `패왕별희`를 세상에 내놓는다. 그녀의 패왕별희는 노도 같은 역사 속에 내던져진 한 아티스트의 가슴 아픈 절망과 슬픔이었다. 그리고, 패왕별희는 스스로 문화혁명의 꽃이 되어야 했던 첸 카이커를 만나, 하늘의 시기로 꽃이 되어 떨어진 데이의 영화가 되었다.
`아이들의 임금님`이란 영화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던 첸카이거의 4번째 작품인 패왕별희는 사실 영화 촬영 전부터 산고를 겪었다. 바로 `데이`에 누구를 캐스팅하는냐가 초미의 관심사이자, 쉽지 않은 고비였다. 당시 `마지막 황제`로 주가가 급등세에 있던 존론과 홍콩의 슈퍼 스타, 장국영 사이의 외줄타기였다. 결국 이 외줄타기의 승자는 `장국영`. 첸 카이거는 불안한 마음으로 장국영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이미 예정되어진 순리이고, 역사였을까? 처음 첸 카이거와 장국영이 만났을 때, 그는 담배 피우던 손가락을 아주 살짝 떨며, 아주 좋은 연기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첸 카이거는 내심 그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달 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쟁쟁한 대륙 배우들인 공리와 장풍의 사이에서 북경어마저 못하는 장국영이 무모할 정도의 집중력과 열정으로 `데이`로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북경어 뿐만 아니라, 경극마저도 완전한 초보였던 그는 대역도 거부하고, 38.9도의 고열 속에서 경극을 연습하고, 북경어를 연습했다. 심지어 식사 시간, 평상시 걸음걸이까지도 북경어 대사를 외우고, 경극의 걸음걸이를 연습했다 한다. 사실 북경어와는 완전히 다른 광동어권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내 크랭크 인이 되고, 패왕별희의 우희는 도즈가 되어 환생한다. 도즈는 엄하디 엄한 사부의 수련 속에서, 소년들의 짖궂은 놀림 속에서, 시토의 보살핌과 함께 `단`으로 성장한다. `단`은 여성이 없는 경극단에서 양귀비나, 우희 같은 여성 역할을 맡는 배우를 일컫는다. “나는 비구니, 본시 사내아이로 태어나…” 여성 경극 노래를 배우는 도즈. 그러나, 사부는 `본시 계집아이로 태어나`를 강요하며, 끊임없이 사내아이임을 부정하게 한다. 어느새 `패왕`과 같은 제왕이나, 장수 역할을 하는 `생`으로 성장한 시토는 “잠시 네가 여자라고 생각하면 되! 단지 경극 대사일뿐이야!”라며, 사부의 담뱃대를 도즈의 입 속으로 후벼 폭력을 가한다. 도즈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입가엔 피가 흐르고, “ 나는 본시 계집아이로 태어나..”
이렇게 도즈는 시토의 도움으로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시토와 함께 우희 역의 `데이(장국영)`, 패왕 역의 `샬루(장풍의 분)`라는 북경 최고의 경극 배우로 성장한다. 그러나, 곧 데이는 `쥬산(공리 분)`이라는 창녀를 그의 아내로 맞이 하는 샬로를 비통하게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일분 일초가 모자라도 한 평생이 아니야!” 절망한 데이. 그 당시 경극의 큰 후원자이자, 우희를 흠모해온 원대인의 집에서 어린 시절 샬로에게 선물하기로 한 장내인 집의 `검`을 발견하게 되고, 데이는 원대인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중일전쟁의 패전. 이제 일본의 세상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상처 받은 데이가 그 검을 품에 안고 인력거를 타고, 일본군을 만났다. 장국영은 어느새 데이가 되어, 번진 화장에 입가엔 빨간 자국을 한 채 앉아 있었다. 첸 카이거는 기억한다. 그때 그가 보여준 절망과 슬픔은 너무나 놀라 왔다고. 촬영이 끝나고, 장국영은 여전히 인력거 안에서 눈물을 머금은 채 있었다. 첸 카이거는 조명기구를 끄라고 사인을 보냈다. 그가 어둠 속에 계속 머물수 있도록 했다.
쥬산은 약속한다. 일본군과의 시비로 감옥에 간 샬로를 데이가 구해 준다면, 자신은 떠나겠노라고. 그러나, 약속을 나뭇잎처럼 버리는 쥬산.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불러, 샬로를 구한 데이는 정작 샬로로부터는 굴욕적인 침 세례를 받으며, 또 다시 상처 받는다.
그리고, 장개석 정권 시절. 데이는 일본군 앞에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간첩죄로 갇히는 신세가 된다. 어느새 유산까지 하게 된, 쥬산은 원대인의 협조로 감옥의 데이를 찾아 간다. “이번이 마지막이예요! 이제 더 이상 샬로는 당신과 함께 하지 않을 거예요” 피고석에 선 데이. 정작 데이를 구하겠다고 변호를 하는 샬로나, 원대인은 개의치 않고, 일본군 앞에 노래를 불렀다고 순순히 자백을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창백한 입술에 `가석방`이라는 지장의 인주를 무표정한 채 묻히고 있다. 마치 잘려진 손가락의 핏자국으로 찍어 버린 경극 수련원 입단 계약서처럼.
또 다시 장개석 정권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데이, 데이는 아편에 빠져들고, 샬로는 이를 끊게 하고자 또다시 데이를 보살핀다. “ 엄마! 세상은 시끄럽지만, 전 편안해요! 공연도 하고, 돈도 벌고. 이 복을 엄마와 함께 나누고 싶어요!” 데이는 아편의 환각 속에서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창녀였던 그의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6년 문화혁명. 첸 카이거 역시 마오쩌둥의 홍위병이 되어 온 몸으로 겪어 내야 했던 그 길고 긴 `인간 개조, 문명 개조`의 시간이 돌아 왔다. 해방구의 하늘과 축복 받는 인민을 노래하던 우미인과 패왕도 그 차디찬 `자기 비판`의 칼날을 비껴 갈 수 없었다. 어느새 성장한 청년 공산당 배우, `서`. `서`는 어린 시절 도즈가 장래인으로부터 상처를 받던 그 새벽에 주어, 길렀던 그 아이였다. 서, 역시 그 칼날의 투사가 되어 샬로와 데이를 겨냥한다.
서로의 반공산주인적인 행동을 비판해야 하는 공개 심판대. 홍위병들의 우뢰 같은 모멸과 폭력 속에서 샬로는 서서히 데이를 부정하게 된다. `반동 부역자, 아편쟁이에서 원사야와의 관계`. 데이의 상처는 마침내 곪아 터진다. 이 때 우미인의 분장과 의상을 입은 장국영의 폭발적인 분노. “ 결국 다 배반을 하는 군! 너마저도.”
“나도 말하겠다. 모든 것을 다 말하겠다. 재앙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아니야. 절대 아니야. 재앙은 자기 스스로가 한걸음 한 걸음 닦아 가는 거야. 그래 내 인생은 오래 전에 끝났어! 근데, 너 패왕은 이렇게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었어! 경극은 종말이야.종말! 업이야! 업보”
무릎 꿇은 샬로를 인정하기 힘들었던 데이, 경극의 종말을 누구보다 안타까와 했던 데이. 데이 앞에서 샬로는 마침내 완전히 바닥까지 무너져, 마침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제 끝내겠다고, 쥬산마저도 부정한다.
홍위병들의 거친 공개비판이 끝나고, 쥬산은 말없이 공개비판 때 내동댕이쳐졌던 검을 다시 데이에게 건네준다. 샬로를 두고, 끝 없이 상처 주고, 상처 받던, 두사람은 이로써 화해를 한 것일까? 그리고, 쥬산은 스스로 목을 맨다. 혼례 때 입었던 그 빨간색의 혼례복을 입고.
그 후 11년이 지나, 1977년. “ 대왕마마 저에게 검을 주소서!” 빈 체육관에서의 데이와 샬로의 마지막 공연. 이젠 어느새 나이 든 두 사람. 데이. “사부에게 머리를 깍여, 나는 본래 사내 아이로, 나는 본래 사내 아이, 계집 아이도 아닌데!” 데이의 노래. 이렇게 데이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확인한다.
“저기 한나라 군사들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저에게 검을 주소서!” 데이의 손은 서서히 패왕의 검으로 가고. 한줄기 섬광. “데이” 소리치는 샬로. “도즈!”.
지난해, 그러니까 2002년 2월 22일. 홍콩 중문 대학에서 `문학과 영상의 비교`라는 강좌가 있었다. 그날 장국영은 데이의 죽음을 3가지 이유로 분석했다. 첫째, 우희의 집착적인 성격 때문에 패왕 앞에서 죽으려고 했다. 둘째, 데이는 자살로써 패왕과 우희에 대한 고사의 결말을 완성시켰다. 셋째, 군중 앞에서 우상으로 살면서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4월 1일. 장국영의 의문스런 추락 이후, 첸카이거와 이벽화는 “장국영은 데이가 되어 떠났다!” 고 했다. 과연 장국영은 `데이`였을까?
`패왕별희`는 첸카이거로 하여금,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 주자로서 칸느의 영광과 함께 흥행과 작품성, 2마리의 토끼를 잡게 해주었다. 쥬산으로 출연했던 공리 역시 그 해 칸느에서 여우 주연상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장국영는 칸느 남우 주연상에선 한 표 차이로. 고배를 마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패왕별희`는 장국영을 만나,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가 되었다. 장국영 스스로도 `패왕별희`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부정할 수 있는 배우가 되었다. 즉 영화적 서사시를 몸에 체득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된 것이었다. 첸 카이거는 훗날, “장국영은 자신이 연기할 역할에 영혼을 바치는 배우”라고 회상했다.
과연 장국영 말대로, 패왕별희가 `순리`이고, `역사`라면, 패왕별희로 인한 그 길고 긴 지루한 스캔들은 무엇일까? 장국영은 `패왕별희`의 성공과 함께, 자신의 고향인 홍콩은 끊임없이 그의 성 정체성을 난도질하고, 가쉽화시켰다. 사실 `패왕별희`는 동성애 영화도 문화혁명 비판이 담긴 이념 영화도 아니다. 장국영이 연기를 한 것은 동성애 경극배우, 또는 대단한 이데올로기주의자가 아니라, `역사와 시대 속에 상처 받고 절망한 한 남자배우의 비애`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감동의 깊이 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봇물인 것이다.
여기 살아 남아 당신이 `그`를 굳이`데이`로만 기억하고 싶다면, 좋다!
그러나, 어느 것으로도 이해 될 수 없는 장국영, 그의 마지막이 있었다. 확신컨데, 진정 하늘이 그를 시기하여, 누군가의 함정에 걸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 나도 말하겠다! 모든 것을 다 말하겠다!"고 나타나는 그의 꿈을 꾸어 본다. 아마 분명히 그 누군가는 자신이 만든 `재앙`에 한발, 한발 다가 가고 있는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패왕별희`를 보자! 장국영! 그가 부르는 영혼의 노래, 하 수상한 우리 시절의 아픔을 다시 한번 고백하자! M.
<모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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