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놓고 극심한 눈치보기에 들어갔다.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억제 정책에 대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부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가 없다 보니 주택담보대출 총량 축소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하향 조정,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 대한 대출 축소 등 자율적인 지침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볼멘소리=지금까지 은행들은 기업대출보다 주택담보 대출에 열을 올려왔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8개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16조2,000억원 늘어난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18조원 이상 증가했다. 정부가 중소기업대출을 늘리기 위해 정부 보증, 은행 자본 확충 등 각종 지원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은행들은 ‘장사’가 되는 주택담보대출에 더 치중한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대출은 지난 1~5월 월평균 3조원 늘어나다 6월에는 1조1,000억원으로 증가규모가 크게 준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6월에도 3조원 중반대로 추정되는 등 꾸준히 3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이 대출 위험은 작으면서도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말 현재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2.57%에 달하지만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55%로 매우 낮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움직임과 관련,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우량 중견기업들은 투자를 미루고 있고 중소기업들의 대출 수요만 있어 은행으로서는 기업대출로만 자금을 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주택담보대출까지 규제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이익을 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죄면 오히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올 7~8월에는 지난 2~3년여 전에 착공해 입주를 시작하는 아파트 물량이 쏟아지는데 이들 아파트 입주자는 어디서 돈을 구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기보다는 기업 투자환경을 만들어 부동산으로 몰린 부동자금이 기업으로 몰리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별로 주택담보대출 눈치보기=거의 유일한 자금운용처인 주택담보대출을 대폭 줄일 수도 없고 정부의 부동산 규제 의지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우선 올 하반기 주택담보대출을 줄일지 여부도 은행별로 엇갈린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경우 올 하반기 주택담보대출 순증액을 1조1,000억원가량으로 잡고 올 상반기(2조315억원)의 절반가량으로 줄일 계획이다. 신한은행도 올해 상반기 1조9,150억원 늘렸으나 올 하반기 증가 목표액을 1조6,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은행들은 올 하반기 목표를 상반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려잡았다. 정부가 직접 규제에 나서면 그때 가서 줄여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올 하반기 주택담보대출 운용계획을 상반기(1조1,300억원)와 비슷한 1조원으로 잡고 시장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상반기 1조6,000억원에서 하반기 2조원으로 늘려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 대해 LTV 비율을 낮추는 방안이나 연체율이 높거나 부도ㆍ파산 가능성이 큰 고객들의 대출을 제한하는 방안, 시중 금리 상승에 대비해 고정금리형 대출상품의 판매 비중을 늘리는 방법 등도 거론되고 있지만 실제 도입 때는 부작용이 만만찮은 실정이다. 주택을 담보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는 서민들의 고통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생계자금 마련 목적의 대출이 절반에 이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줄이면 서민들이 주대상이 될 것”이라며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정부 시책이나 시장 추이가 조금 더 명확해져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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