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울산시 등에 따르면 공단이 밀집한 울산지역의 경우 지하에 매립된 각종 배관이 지나가고 있다. 길이만 600㎞에 달한다. 이들 배관들은 누출되면 폭발하거나 대규모 인명피해를 볼 수 있는 유독물질을 옮기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건드리기만 하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땅속 '지뢰'나 다름없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배관을 관리하는 기관들이 나눠져 있는 데다, 업체들도 자신들의 배관만 관리하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의 배관지도는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땅속에는 6개 업체가 각각 관리하는 배관들이 지나고 있지만, 이를 통합관리하는 컨트롤타워는 부재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낡은 배관을 교체하기 위한 공사때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업체 한 관계자는 "지하에 묻혀 있는 배관의 경우 6개 업체의 배관들이 뒤섞여 있지만, 자사의 배관만 관리하다 보니 노후 배관 교체 등의 공사를 할 때 종종 다른 업체의 배관을 파손하게 된다"며 "공사 업체들도 어느 업체의 배관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깜깜이' 상태에서 공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토로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10년 지하 배관을 지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통합 파이프랙 구축 논의가 시작됐지만, 예산문제로 수년째 올스톱 돼 있는 상태다. 통합 파이프랙은 각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설치하는 배관대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해 기업체 간 원료, 완제품, 부산물, 에너지를 교환하는 통합배관을 지상에다 설치하는 것으로, 지하매설 노후배관의 굴착에 따른 교체비용을 줄이고 배관 손상에 따른 대형 사고 방지 등의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통합 파이프랙 작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노후배관에 따른 각종 사고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배관이 노후돼 각종 누출사고가 날 수 있고, 이를 한꺼번에 교체하다 보면 더 큰 문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에 매설된 각종 배관은 울산석유화학공단에만 600㎞에 이른다. 이 가운데 15년 이상 된 노후배관이 전체의 70%에 이르고, 30년 이상 된 배관도 12%인 74㎞에 이른다. 문제는 지하에 있다 보니 새는 곳은 있는 지, 얼마나 부식됐는 지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기획경영실장은 "장치나 배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썩기 마련으로 좁은 지역에 잠재적 위험시설이 이토록 집중돼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매설된 배관은 사람으로 말하면 혈관 같은 존재로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문제 여부를 식별하기도 곤란하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정부도 다시 통합 파이프랙 구축 논의에 착수키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울산시, 한국산업단지공단은 23일 오후 울산시청에서 '울산·미포 및 온산국가산단 통합 파이프랙 구축사업 수요조사' 설명회를 연다. 이번 수요조사는 지난 17일부터 오는 8월7일까지 실시되며 조사내용은 시범구간 내 기존 배관 교체·증설, 특수목적법인(SPC) 참여 및 출자 가능성 등이다.
우선 총 1,474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울산석유화학단지에서 온산단지까지 14.5㎞ 구간을 시범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사업은 배관망 사용업체 위주로 구성된 SPC가 설립되어 추진하며 사업비는 SPC 참여업체, 정부 저리융자 정책자금 등으로 충당된다. 사업에 앞서 에너지공학계가 지난 5월부터 4개월의 기간을 두고 현재 지하 배관망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안전진단을 벌이고 있다.
이동구 실장은 "독일의 루드비히스하펜에 위치한 바스프 산업단지의 경우 200여개 공장간 최적의 통합 파이프망 구축을 통해 매년 8,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는 등 세계 최고의 화학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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