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촉발된 신흥국 금융불안, 미국과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 유럽 디플레이션 등 동시다발적인 악재를 만나 요동치고 있다. 신흥국에 머물던 태풍의 눈이 선진국까지 상륙할 경우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3일(현지시간) 다우존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 등 뉴욕 3대 증시는 모두 2%대의 급락세를 보였다. 특히 S&P500지수 하락폭은 지난해 6월 이후 가장 컸고 나스닥종합지수도 지난 2011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10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21.44까지 올라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20을 넘으며 투자가들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반면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2.64%에서 2.58%로 급락하는 등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커지고 있다. CNBC는 이날 "뉴욕증시가 미국과 중국의 경기지표 부진으로 테일스핀(Tailspin·조종사의 제어력 상실로 인한 급강하) 중"이라고 전했다
미 공급관리자협회(ISM)는 이날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1.3으로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민간 및 공공 건설 프로젝트 지출규모도 저조했다.
사모펀드인 BMO의 잭 애블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시장은 올해 미 경제의 개선 정도가 아니라 가속을 기대했다"며 "지표가 예상에 못 미치면서 주가가 10% 이상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임스인베스트먼트리서치의 배리 제임스 대표도 "올해 증시가 최대 20% 정도 폭락한 뒤 연말에 소폭 오른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미 비농업 부문 신규 취업자 수, 연말 소비 지표가 부진한 데 이어 주택시장도 금리상승의 여파로 냉각 조짐을 보이는 등 미 경기지표가 일제히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또 미 연방정부 부채조정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리스크 요인이다. 이날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2월 말이면 정부 부채한도가 소진된다"며 "지금 당장 상한선을 올리지 않는 것은 의회의 실수"라고 경고했다.이처럼 미 경제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면서 "연준이 양적완화를 너무 성급하게 축소했다(바클레이스의 배리 냅 포트폴리오 전략가)"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BTIG의 패트릭 보일 트레이더는 "현재 시장은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을 시험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하나의 세계 경제 위협요인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다. 제조업·고용 등 일부 지표가 개선되고 있지만 미 경기가 둔화할 경우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잠정치가 0.7%라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0.9%는 물론 목표치인 2%에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4일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10주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울러 신흥국 위기가 선진국으로 전염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BNY멜런의 사마르지트 샹카르 글로벌 전략가는 "위험회피(리스크 오프) 투자심리가 견고해지면서 신흥시장 자산·통화뿐 아니라 선진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시에테제네랄도 "신흥국 혼란에다 중국 경기 둔화, 유럽의 낮은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퍼펙트 스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여러 악재가 동시에 부각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7일 발표되는 미 제조업 고용지표에 쏠리고 있다. 이 지표마저 시장 예상치를 밑돌 경우 미 경제의 소프트패치(일시적인 경기후퇴)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이 또 한번 충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CBS 칼럼니스트인 안토니 미르하다리도 "신흥국 위기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고 시장 패닉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연방정부 부채상한 리스크마저 겹칠 경우 미 증시도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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