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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이상 취업자 630만명 전체 노동인구의 10% 넘어
다양한 육아지원 요코하마, 합계출산율 20년래 최고로
돗토리현 의료·보육비 지원 확대… 지자체 저출산 극복 노력도
일본 도쿄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되는 거리인 지바현 노다시에 위치한 금속분말 제조업체 아토마이즈가공. 이 회사는 10년 전부터 정년(만 60세)이 지난 뒤 재취업한 근로자에게 급여를 100% 지급하고 있다. 현장에서 회색 유니폼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는 한 기술직 근로자의 나이는 68세. 이 회사의 최고령 근로자다. 고령자 재취업이 흔한 일본에서도 "정년 이전의 급여를 전액 제공하는 회사는 보기 드물다"는 것이 마치다 히루하루 관리부장의 설명이다.
실험의 성과는 좋다. 아토마이즈 근로자는 지난 2010년 80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 2012년에는 이바라키현에 공장도 증설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노동장관이 아토마이즈의 고용정책을 배우기 위해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물론 고령자 채용정책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마치다 부장은 "우리는 한국·대만 전자업체에도 수출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다"며 "생산성이 확보돼야 은퇴자고용정책도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기업, 노인 노동력에 눈 돌리다=현재 1억2,000만명을 넘는 일본의 인구는 오는 2050년에 1억명선 아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20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수가 약 3,600만명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49%를 넘어서며 젊은 세대의 부양 압력을 대폭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이 비율이 2060년에는 78.3%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는 아토마이즈처럼 인구문제에 선제 대응하는 기업과 지역자치단체가 주목받고 있다. 기업들은 노인 노동력을 일터에서 활용하며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갖가지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정년 이후 재취업자에 대해 근로시간과 임금을 절반으로 줄인 하프타임근무제를 시행하는가 하면 고령자의 편의를 위해 고령직원 전용 생산라인도 갖췄다. 주택건설 업체 다이와하우스는 재취업자에게 3분의2 수준의 급여를 주는 대신 성과급을 늘렸다. 지난해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630만명을 넘어 전체 노동인구의 10%를 초과한 상태다.
일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층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는 주장도 많다. 인구감소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생산성을 책임지는 경륜의 소유자로 바라보자는 얘기다. 중견 제조업체 마에카와제작소에서 고령 근로자를 관리하는 가모다 노부모리 고문은 "정년이란 원래 평균 수명과 같은 개념이었다"라며 "수십년간 한 분야에서 쌓인 경험이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도록 정년의 진짜 의미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육아·출산 복지 확대에 나서는 지자체=재정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출산·양육 복지환경 개선에 성공한 지자체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인구 370만명의 대도시인 요코하마시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보육원에 들어가지 못한 대기아동이 1,500여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그러나 히야시 후미코 현 시장 취임 이후 다양한 육아지원책을 시행하며 전국 지자체의 롤모델로 떠올랐다. 올 4월 현재 보육시설 대기아동 수는 20여명까지 떨어졌다. 출산율도 높아져 여성 1인당 평생 낳는 아이의 수를 평균한 합계출산율은 1994년 이래 최고치인 1.31명에 달했다. 시부야 아키코 요코하마시 보육대책과장은 "기업 외에도 사회복지법인, 지역 학교법인 등 여러 주체가 협력하면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출산을 자력으로 극복하는 지자체들은 이 밖에도 많다. 2013년 합계출산율 1.62명으로 전국 평균(1.43명)을 웃돈 돗토리현은 2010년부터 '육아왕국'을 표방하며 의료·보육비 지원을 확대해왔다. 올해부터는 산간지역 주민의 육아비 절반을 지자체가 부담한다.
다만 기업이나 지자체의 노력에 비해 중앙정부의 혁신은 미덥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령자 재취업에 대해서도 정부는 기업들에 재고용을 '권장'만 할 뿐 실질적인 지원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예산에서 노인복지를 줄이고 양육·출산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던 계획도 고령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지지부진하다.
가계소득과 출산율의 관계를 강조하는 모타니 고스케 일본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하는 엄마'가 늘어날 때 가구당 소득이 증대되고 지속적인 출산율 상승이 이뤄진다"며 "아베 신조 정권이 뒤늦게나마 여성의 노동참여를 촉진하고 있지만 정작 직장 내 성차별 개선이나 육아·가사지원 등에 소홀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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