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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광화문·서대문 형무소… 역사 현장서 권력 본질 파헤치다

장화진 '공간의 굴절과 기억'전

장화진 ‘숭례문의 유령 이미지’

지난 2008년 2월 10일 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처참하게 사라졌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한 사람의 방화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대한민국의 물리적 자산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숭례문이란 정서적 자산까지 송두리째 파괴하고 말았다. 숭례문 화재로 큰 충격을 받은 작가는 2010년 '고스트 이미지(Ghost Image from Sungnyemun)'이란 설치 작품을 통해 숭례문에 대한 깊은 오마주(존경심)를 표현한다. 견고한 철제 구조물 속에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한 숭례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관람객은 차양으로 가리고 복원 공사 중인 숭례문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장화진(64) 이화여대 교수 겸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이 금호미술관의 기획전에 초대 받아 지난 10년간 작업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 선보였다. 사간동 금호미술관 지상 3층부터 지하까지 가득 채운 그의 작업들은 '공간의 굴절과 기억'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드러나듯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해체와 구현을 통해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뚜렷한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해 해체됐다가 6.25전쟁 때 파괴된다. 1968년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어졌으나 1996년 조선총독부가 헐리면서 경북궁 복원 작업이 이뤄지고 콘크리트 광화문도 함께 철거된다. 결국 지난 한세기 동안 광화문은 두 번 파괴되고, 두 번 지어진다. 광화문뿐만 아니라 상당수 근대의 건축들은 역사의 굴곡에 따라 파괴되거나 혹은 건축되기를 반복했다. 이에 주목한 작가는 '강박(Obsession)'이란 작업을 통해 광화문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켜켜이 잘라내 겹겹이 중첩되는 사진 필름 형태로 재탄생한 광화문은 권력의 이동 혹은 역사의 부침에 따른 건축과 파괴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서대문 형무소와 강화도 성공회성당을 형상화한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1907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서대문 형무소는 독립 운동의 증언대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현대사의 중심 무대가 된다. 그러나 1992년 광복절에 독립공원으로 말끔히 재단장하면서 과거의 역사는 재구성되고 편집된다. 이렇게 재생된 역사의 현장을 작가는 사진으로 먼저 기록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작가가 화폭에 표현한 붉은 벽돌의 건물은 널따란 잔디 위에 올라 앉아 편안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과 관객 사이에 의도적으로 설치한 그물망은 서대문 형무소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서대문 형무소는 공원으로 다시 탄생했지만 결국 건축물은 통치와 지배의 정밀한 도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 재개발로 인해 폐허로 변해버린 수색 지역의 버려진 집들을 목격하고 작업한 '빈 공간'이나 청계천의 낡은 간판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업한 '사인 보드' 등은 작가가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갖는 연민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과거 역사의 편집과 검열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현대 미술의 중심 가치였으며 장화진의 작업 역시 그러한 맥락에 자리하고 있다"는 한 미술평론가의 평처럼, 노 작가는 건축 공간의 변용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역사의 본질에 다가서는 노력을 끊임 없이 기울이고 있다. 28일까지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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