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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경기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스페인ㆍ이탈리아 등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에 또다시 'P(Politicsㆍ정치)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강도 높은 긴축정책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른 가운데 정치권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포퓰리즘'을 앞세운 구태 정당이 약진하면서 조만간 리더십 위기가 덮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는 국가신인도 하락과 금융시장 혼란 등으로 이어져 겨우 바닥탈출 기미를 보이는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리아노 라호이(58) 스페인 총리와 집권 국민당이 장기간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강한 사임 압력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총리가 지난 2일 성명에서 "당에서나 어디에서도 '검은 돈'을 받거나 건넨 적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4ㆍ4분기 실업률이 역대 최대인 26.02%로 치솟으며 무려 600만명의 국민이 일자리를 잃은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11년간이나 불법자금을 받아왔다는 소식이 국민 전체의 분노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스캔들 이후 집권 국민당의 지지율은 23.9%로 한달 만에 5.9%포인트가량 급락하며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FT는 "스페인 사람들은 현 총리가 다소 둔하지만 정직한 사람이어서 긴축재정 정책을 공평하게 집행할 것으로 기대했다"며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정치권 및 헌법기관에 대한 믿음까지 깨져 국민들의 분노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긴축개혁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온 라호이 총리가 흔들릴 경우 가뜩이나 취약한 스페인 금융시장도 동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 불법자금 스캔들이 폭로된 당일인 지난달 31일 스페인 주가지수는 2.5% 급락하며 지난해 9월26일 이래 하루 기준으로 가장 큰 폭까지 떨어졌다.
호세 카를로스 디에스 SA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같은 경기침체에서 스페인 경제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정치 스캔들"이라며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의 투자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고 평했다. 라호이 총리를 대체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FT는 "'정치적 대안' 부재가 대중의 분노를 상쇄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주며 경제회복 프로그램의 신뢰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달 총선을 앞둔 이웃 이탈리아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6) 전 총리의 약진이 정치적 위기요인으로 등장했다. 그는 지난 1년간 마리오 몬티 정부가 실시한 구조조정과 재정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포퓰리즘 공약을 잇따라 내놓아 금융시장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오는 24~25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할 경우 재산세를 폐지하고 지난해 걷힌 재산세(40억유로)를 환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베를루스코니는 "모자란 세원은 스위스 등지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기업가들의 부동산세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며 "국가경제를 암울한 안개에 빠뜨린 여권을 심판하기 위해 역사적인 도전에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5년간 소득세ㆍ사업세ㆍ부가가치세 증세를 멈추고 고액 연봉자를 대상으로 한 부유세도 부과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지난달 올해 GDP 성장률을 종전 -0.2%보다 높은 -1%로 관측하는 등 이탈리아의 위기국면도 진행형이다. 실업률 역시 2011년 8.4%에서 2014년 12%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로이터는 "베를루스코니의 연설 이후 '득표 구걸' '또 하나의 복권'이라는 촌평이 나도는데도 집권당인 좌파와 우파의 차이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FT도 "베를루스코니의 주장이 국민의 신임을 얻어내지는 못할지라도 현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며 '신뢰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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