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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3월24일] <1351> 존 해리슨


영국의 고급두뇌들이 런던에 몰려들었다. 1714년 의회가 내건 상금 2만파운드(요즘 가치 64억원)를 따내기 위해서다. 시상조건은 정확한 경도 측정. 선박의 현위치와 목적지를 알지 못해 난파하는 선박이 많아지자 영국은 거액의 상금을 내걸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뉴턴은 천체 측정에서 가능성을 찾았으나 진전이 없었다. 수많은 천문학자와 수학자, 해군 장교들의 도전이 모조리 실패하고 경도국의 존재마저 잊혀져가던 1735년 이변이 일어났다. 존 해리슨(John Harrisonㆍ당시 38세)이 하루 오차 3초인 캐비닛 크기만한 시계 H1을 들고 나타난 것. 경도국은 경악했다. ‘기후는 물론 중력마저 변화하는 해상에서 정확하게 작동하는 시계란 존재할 수 없기에 시계를 이용한 경도 측정 역시 불가능하다’는 뉴턴의 생각이 깨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해리슨이 교육을 받지 못한 목수 겸 시계공이라는 점도 심사위원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의구심과 시샘 속에서 진행된 3년간의 해상실험 결과는 대성공. H1은 경도를 완벽하게 측정해냈다. 마땅히 경도상을 받았어야 할 해리슨은 이때부터 30년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 위원회는 온갖 이유를 달아 심사를 지연시켰다. 설계도와 완성품을 압수하고 똑같은 제품을 만들라고 종용한 적도 있다. 인고의 세월 동안 해리슨은 어렵사리 구한 책을 모조리 필사해 머릿속에 담아가며 개량을 거듭, 1759년 야구공 크기의 H4를 선보였다. 쿡 선장의 명성도 이 시계 덕분이다. 결국 해리슨은 83번째 생일인 1776년 3월24일 사망하기 3년 전인 1773년에서야 상금을 타냈다. 해리슨의 시계는 영국 선박에 탑재돼 해상교역을 배증시켰다. 편견과 차별ㆍ억압에 맞선 한 시계공의 끈질기고 장엄한 생애가 대영제국의 영광을 앞당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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