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아파트의 시야를 턱 가로막는 고가 고속도로를 지으라고 가구당 1,500만원이나 보탰다니, 얼마나 기막힌 노릇입니까.” 판교 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이 ‘광역교통시설 부담금’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났다. 영문도 모른 채 납부한 부담금 4,400억원이 판교와는 관계도 없는 애먼 도로를 건설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광역교통 부담금을 걷어 부담자들의 이해와는 동떨어진 곳에 집행했다는 얘기인데, 이 같은 갈등은 앞으로 개발되는 신도시ㆍ택지지구 등에서도 심심찮게 발생할 전망이다. 5일 건설교통부와 성남시, 관련업계에 따르면 판교 신도시 입주 예정자들과 성남시 의회는 “잘못 부과된 교통 부담금을 재조정하거나 올바른 곳에 써 달라”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판교 아파트 계약자들이 신도시 사업시행자인 토지공사, 주택공사, 성남시 등 3개 기관을 통해 물어야 하는 광역교통 부담금은 총 1조7,000억여원이다. 이 중 현재 건설 중인 서울~용인간 경수산업고속도로에만 4,400억여원이 투입된다. 계약자 가구당 1,500만원 꼴이다. 문제는 이 경수고속도로가 판교 입주자들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용인 흥덕지구(흥덕IC)와 서울 강남의 헌릉로(헌릉IC)를 잇는 경수고속도로 노선은 서판교IC를 통해 판교의 서쪽 끝머리를 지난다. 이 때문에 판교 계약자들에게 거액의 교통 부담금이 부과됐지만 기존 경부고속도로나 분당~내곡간, 분당~수서간 도로 등을 놔두고 통행료까지 물어가며 우회 도로를 이용할 주민은 거의 없다는 게 계약자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서판교 구간은 35m 높이의 고가로 건설돼 불과 20여m 떨어진 주변 아파트에 소음ㆍ공해는 물론 조망권 피해까지 끼치게 될 형편이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계약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다. 판교 입주예정자 연합회(cafe.daum.net/pangyotown)의 김지호 사무국장은 “정작 판교 주민들에게 절실한 서판교역 등의 신설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엉뚱한 도로에 소중한 부담금을 쓰고 있다”며 “정부가 교통 부담금 처리에 있어 ‘수익자 부담 원칙’을 지켜주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는 한편 건교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감사원은 지난 2004년 경수고속도로의 통행량 예측과 판교 입주자의 민원발생 가능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교부에 관련자 징계 등을 요청한 바 있다. 성남시 의회 역시 시민의 편익과는 거리가 먼 도로에 돈을 댈 수 없다며 잔여 부담금 277억원의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정부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건교부 전성철 광역도로팀장은 “판교 뿐 아니라 다른 택지지구 계약자들의 교통 부담금도 모두 다양한 광역교통체계 개선에 쓰이고 있다”며 “사업시행자가 개발이익의 일부를 부담금으로 납부하겠다고 약정한 만큼 계약자들이 광역도로의 혜택을 못받을 것 같아 부담금을 못 내겠다면 입주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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