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핀란드 경제의 몰락을 가져왔다."
다시 위기에 빠진 핀란드 경제상황에 대한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총리의 진단이다.
스투브 총리는 이달 초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핀란드 경제가 어려워진 원인에 대해 이같이 지적하고 "아이폰이 모바일폰의 절대강자이자 핀란드 정보기술(IT) 부문의 꽃인 노키아를 쓰러뜨렸고 아이패드는 핀란드 산림과 제지산업을 죽였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국가 경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던 노키아가 무너진 이후에도 벤처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혁신을 거듭해 우리에게는 본받아야 할 창조경제의 롤모델이었다. 특히 로비오사의 '앵그리버드', 슈퍼셀의 '클래시 오브 클랜' 등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바일게임들이 세계 게임시장을 주도하면서 우리 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재기할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속사정이 어떤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핀란드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증가율이 3년 연속 마이너스가 될 상황에 직면해 있고 지난 2008년 6%대였던 실업률은 1·4분기 8.4%까지 치솟았다.
핀란드 경제가 왜 이렇게 급변했을까. 침체된 유럽 경제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진실은 다름 아닌 벤처의 한계 때문이다. 잘나가는 벤처기업이 인력을 채용해도 고작 수천 명에 불과하다. 수만 명을 채용하는 대기업에 견줄 바가 못 된다. 대기업 노키아가 없는 한계가 몇 년 가지 못해 다시 표출된 것이다.
대기업 없는 핀란드, 경제침체 위기
지금 우리 주력산업도 줄줄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핸드폰·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어느 하나 좋은 것이 없다. 삼성전자의 3·4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에 비해 반토막으로 줄었고 조선·석유화학 관련 업체들은 대부분 적자로 반전한 상태다.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휴대폰은 애플과 중국 샤오미에 앞뒤로 치이고 자동차는 내수시장을 잃어가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는 매월 사상 최고의 점유율을 경신하고 있다. 내년에는 주력산업 실적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게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경제·산업전망 세미나의 골자다. 경기회복은커녕 추가 침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미 주요 대기업에서는 감원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달 들어 임원 30%를 줄였고 삼성·현대차 등도 연말 인사를 앞두고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주력산업이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터라 구조조정 회오리가 어디까지 불지 종잡기 힘들다.
여기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창업 전선에 머리를 내밀면 가뜩이나 힘겨운 창업시장은 더 혼탁해진다. 우리 창업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다산다사(多産多死)구조도 시발점이 다름 아닌 기업이다. 기업에서 인력을 밀어내지 않아야 창업시장도 숨통이 트인다.
이런 상황에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등으로 통신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기업을 옥죄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가계통신비 완화라는 대의명분보다 '단통법=단언컨대 통신사만 배 불리는 법'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대표기업이 위기타개 선봉에 서야
몇 년 전에도 "휘발유값이 비싸다"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가격 인하를 밀어붙이고 알뜰주유소까지 만들어 석유유통구조를 왜곡시켰다. 이로 인해 국민이 어느 정도 혜택을 봤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정유사가 적자로 돌아선 한 원인이 됐다.
만약 주력산업을 이끌고 있는 대기업이 더 뒤흔들리면 또다시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 어떻게든 이들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 벤처 생태계도 만들고 내수시장의 독점구조와 지배구조의 불투명성도 해결해나가야 한다.
경제회복이 절실한 지금 분명한 것은 이들 기업은 한국 대표기업이고 이들이 한국 경제 위기 타개의 선봉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산업부장(부국장) 이용택 ytlee@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