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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금융위기주범' 美MBA 출신, 월가 외면 취업난

사회분위기 급랭속 금융권 일자리·임금 급감<br>공무원등 타분야로 눈돌려… 사모펀드도 인기<br>"윤리헌장 제정·교육과정 개편" 자성 목소리도

미국의 실업률이 지난달 9.5%로 치솟은 가운데 과거 고소득 전문직의 보증 수표로 통했던 경영학석사학위(MBA) 소지자들의 대우도 예전보다 크게 낮아졌다. 미국 뉴욕주의 한 대학생이 구직센터를 방문해 일자리를 찾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금융시장 황금기, 경영학석사학위(MBA)는 고소득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은 물론 직장인까지 앞 다퉈 유명 비즈니스스쿨의 문을 두드렸다. 2년간 내야 하는 학비만 20만 달러에 달하는 등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졸업 후에는 그 이상의 보상이 따랐기 때문이다. MBA 출신들은 뉴욕 월가를 비롯한 전세계 금융가를 장악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MBA 간판은 '수치심의 주홍글씨'가 됐다. 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리처드 펄드 리먼 브러더스 CEO를 비롯해 비크람 팬티드(씨티그룹 CEO), 존 테인(메릴린치 CEO), 존 폴슨(헤지펀드 매니저) 등 세계 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이들은 모두 MBA 출신이다. 금융 위기로 전세계 한 해 총생산(GDP)에 해당하는 부(富)가 허공으로 증발됐다. 뿐만 아니라 대량 실업사태 등으로 일상 생활 깊숙하게 고통이 파고들자 많은 이들이 MBA를 백안시했다. 경제 상황과 사회분위기 급랭 속에 MBA 출신들의 입지는 급속도로 좁아졌다. 졸업을 앞둔 MBA들은 일자리 찾기가 만만찮아 지면서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했다. 금융위기 이후 월가에서만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짐을 싼 마당에 새롭게 일자리를 찾기란 낙타 바늘구멍 만큼이나 어려워졌다. 월스트리저널(WSJ)에 따르면 한 비즈니스스쿨에 의뢰된 컨설팅 관련 인력 채용은 지난해보다 75%나 격감했다. 금융권보다 피해가 적은 제조업 역시 경기 침체로 사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최상위권 MBA라고 해서 한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취업담당자인 자나 키에스테드는 "지난해에 비해 금융권에서 의뢰된 일자리는 40%, 전체 일자리는 30%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는 MBA 2년차들의 90%가 일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올해는 78%에 그치고 급감했다. 펜실베니아대 와튼비즈니스스쿨은 캠퍼스 채용은 지난해보다 20%가 줄었다. 덩달아 MBA 출신들의 임금도 뚝뚝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금융권에 취직할 경우 한해 기본급으로 5만5,000~8만 달러를 받았고 여기에 계약 보너스로 8,000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또 연말이면 기본급에 해당하는 만큼의 보너스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크게 악화됐다. 기본급은 큰 차이가 없지만 계약보너스는 절반인 4,000달러로 줄었고 연말 보너스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위권 비즈니스스쿨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입도 선매는 옛말, 서너 곳의 회사에 이력서를 내도 연락이 올 지를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많은 MBA졸업생들은 낮은 임금은 물론 짧은 기간의 계약직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 정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MBA 졸업자들은 금융권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다트머스스쿨의 취엄 담담관인 이매뉴얼 스터먼은 "골드만삭스 같은 예전의 대박 일자리를 구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진 못하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대박을 꿈꾸며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와튼스쿨을 졸업한 제시카 레비는 인턴으로 근무했던 UBS의 관리자로부터 "엄청나게 유능하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UBS는 물론 다른 투자은행(IB)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미 국무부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외교관시험을 쳤다. 레비는 "많은 동창생들이 과거에는 생각치도 않았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면서 "일례로 금융을 전공한 친구가 음악의 특기를 살려 재즈클럽을 개업했는데,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 모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바뀐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와튼스쿨 졸업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레이나 페이지는 지난해 여름 인턴으로 근무했던 JP모건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두바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와인 수입업에 종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니엘 밀러도 뉴욕 맨해튼의 사설 부티크에서 경험을 쌓으며 금융권 직장을 찾았지만 끝내 실패하자 랍비(율법학자)가 될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썰렁해진 취업시장은 MBA 재학생들의 취업 선호를 변화시켰다. 특히 종전에는 꺼리던 사모펀드의 수직상승이 눈에 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해 사모펀드나 벤처 캐피털로 취직한 비율을 지난 2003년 8%에서 지난해에는 21%로 높아졌다. 스탠포드가 발표한 자료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사모펀드로 취직한 졸업자는 같은 기간 9%에서 19%로 늘어났다. 포춘지가 MBA 재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취업 선호 상위 11위에 올랐다. 블랙스톤은 지난해 100위 권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 제너럴일렉트릭(GE)보다 앞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한편 여론의 따가운 눈총 속에 MBA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신들을 고용한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한 나머지 금융시스템은 물론 사회 전반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데 대한 반성이 시작된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BS) 등 140개 비즈니스스쿨, 1,100여 명 재학생, 졸업자들은 최근 윤리 헌장을 발표했다. 헌장은 "사람과 자원을 접목시켜 사회에 필요한 서비스와 재화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MBA의 목표"라고 정의했다. 또 청렴의 의무와 동료에 대한 의무 등 8개의 세부 규정을 내놓았다. 비즈니스스쿨의 교수진들도 교육 과정 개편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MBA 과정이 단기적인 고수익과 기계적인 자산분석 기법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엘리트주의에 따른 과도한 자신감을 키웠다는 비판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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