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투자자들이 회계법인이나 공인회계사들을 상대로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자주 접한다. 모든 소송에서 투자자 대부분은 "회계감사인들이 회계감사를 제대로 했다는데 경영진이 숨긴 회계분식이나 각종 부정사실을 어째서 발견하지 못했느냐"고 회계감사인들을 몰아세운다.
검찰·경찰이라면 사무실 또는 자택을 압수 수색해 숨겨진 장부나 증빙을 강제로 확보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구속해 조사하기도 한다. 위조감별기나 거짓말탐지기 같은 첨단장비들을 총동원해 샅샅이 살피기도 한다. 회계감사인들이 회계감사업무를 수행할 때 이런 방법을 동원할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각종 부정이나 회계분식을 숨기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회계감사인들에게는 검찰·경찰과 같은 강제수단이 전혀 없다. 회사·거래은행 또는 거래처 등의 협조가 있어야만 확인해볼 수 있는 임의조사 수단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들의 협조가 생각보다 훨씬 여의치 않다는 데 있다. 누군가 우리 집 살림을 빤히 들여다본다고 상상하면 그 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어쨌든 회사로서는 회계감사인도 외부인이니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은 제발 안 봤으면 할 것이다. 어디 회사만 그러하랴. 거래처들도 회계감사인들의 확인 요청에 열에 일곱은 묵묵부답이다. 이런 비협조적인 상황에서는 강제수단이 있지 않고서야 회계감사인들이 숨겨진 회계분식을 적발해내기란 실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노릇이다.
오죽하면 회계감사기준 첫 부분 '감사의 고유한계(限界)' 파트에서 "회계감사인은 감사를 위해 회사로부터 열람·등사·제출받은 회계에 관한 장부·서류·자료 등의 문서가 진실하다고 신뢰한다. 따라서 회사의 임직원에 의한 내부공모, 위조 또는 변조 등 문서의 허위성 여부에 대한 조사·판단은 재무제표 감사의 범위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을까.
이런 내용도 있다. "부정이나 오류 때문에 회사의 재무제표가 중요하게 잘못돼 있다는 사실이 감사 종료 후에 발견되더라도 이것만으로 자동적으로 부실감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실에서의 회계감사는 파워풀한 수단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회계감사가 강제력을 지닌 수사라는 환상을 버리고 회사가 제출하는 방대한 자료와 진술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검토해 '합리적 확신'을 얻는 임의조사 수단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손해배상 소송 등에서 회계감사인들의 책임소재와 책임 여부를 가려야 마땅하다.
건강을 위한 필수절차로 자리 잡은 내시경 검사, 솔직히 받으려면 얼마나 힘든가.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받는 검사라지만 밥도 굶고 설사약도 먹으며 검사를 받기도 전에 진이 쏙 빠진다. 소중한 건강을 위해 의사에게 우리 속을 다 보여주듯 회사도 재무건강을 위해 회계감사인들에게 모든것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문화가 하루빨리 자리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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