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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계화와 민주주의
입력1999-05-10 00:00:00
수정
1999.05.10 00:00:00
세계화는 개방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따르노라 서둘러 개방하다가 빚만 늘어난 탓에 환란의 쓴 맛을 단단히 보고 있다. 전례없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것이 주요 정책목표가 되었다. 은행이건 기업이건 자산을 해외에 매각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우리 국민정서로는 2년전만 하더라도 꿈도 못 꿀 일들이 여기저기 벌어지고 있다. 아무거나 무차별적으로 외국인들에게 내다 팔려는 듯 보여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다. 마치 빚 못갚아 거덜난 집이 문전옥답 팔아치우는 격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도대체 세계화가 무엇인가? 전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되는 변화이다. 통신과 수송기술이 발달하여 지구 저편 끝이 이웃처럼 되었다. 온 지구가 이웃인데 나라마다 서로 다른 규범은 지구촌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공통규범이 필요해 진다. 세계가 이웃으로 되려면 물리적 근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사는 방식도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함께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어차피 이웃을 모르고 사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종전처럼 살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생활방식까지 바꾸면서 세계화를 따라가야 하는가? 답은 자명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부(國富)의 원천은 황금이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황금이 아니라 사실은 분업하는 지혜임을 밝힌 사람이 아담 스미스이다.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번영은 결국 분업의 지혜가 발달한 결과이다. 단순한 교환으로부터 복잡하고 정교한 기업조직과 사회제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분업방식은 다양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도 분업하는 방식에서 확연하다. 경제발전이란 결국 분업하는 지혜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분업이 왜 유리한지에 대한 설명은 대체로 간단하다. 사람마다 자신의 전문업무에만 충실한 것이 더 능률적이라는 것이다. 열 사람이 제대로 분업하면 한 사람이 혼자 하는 것보다 열배가 아닌 몇백배 더 많이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백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제대로 분업하면 열 사람 한 팀보다 몇백배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문별 활동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고 뿔뿔이 제멋대로 풀리면 오히려 파국적이다. 분업의 효과는 부문별 전문활동이 제대로 조정되어야 살아난다. 결국 조정능력의 한계가 분업규모와 구조를 제한하는 것이다. 재래식 조정능력은 한정된 규모의 기업을 한군데 몰아둘 수밖에 없었다. 국제분업 또한 제한된 상품교역에 머물렀다.
그러나 현대의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수송기술은 분업의 공간적 제약을 크게 허물었다. 과거의 국제분업은 국적기업들간의 무역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제는 소속 부서를 세계 여기저기에 설치한 하나의 기업 형태로 국제분업이 조직되는 판이다. 이와 더불어 금융산업의 발전은 국제 합작투자를 통한 세계기업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무역 수준에 머물던 국제분업이 국경을 넘어 편성된 세계기업을 통한 분업으로까지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분업의 지평이 새롭게 펼쳐진 것은 산업혁명이래 처음이다.
또한번 인간의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전세계가 이웃으로 가까워지면서 국제분업 또한 더욱 심화되고 있다. 누구든 어느 나라이든 이 기회를 외면하면 반드시 낙오한다.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대세인 것이다.
백년전에 외국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였다면 그것은 침략이었다. 인수한 기업을 활용하여 우리 시장에서 돈을 벌어 본국으로 빼돌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외자가 국내기업을 인수하거나 자본참여한다면 사정이 다르다. 우선 돈을 버는 무대는 세계시장이다.
우리와 외자가 협력하여 세계시장을 상대로 사업하도록 되는 것일 뿐이다. 외자에 종속당하는 것과는 다르다. 분업사회의 부문별 기능적 관계는 대단히 밀접하다.
사람마다 알게 모르게 싫든 좋든 더욱더 상호의존적으로 되고 만다. 분업체계의 상호의존성은 일방적 종속성이나 예속성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것을 착각하고 국제분업 참여를 거부하면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다. 북한이 좋은 예이다.
선진국의 홈리쓰는 선진국 자본이 이들을 버리고 더 싸고 유능한 후진국 인력을 사업파트너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생겨났다. 재래식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불황은 일본이 다른 선진국들과는 달리 일본인만을 사업파트너로 고집하고 세계화를 거부한 결과이다.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민족주의적 대처방식은 무엇일까?
세계화가 생산성의 폭발적 향상을 도모하는 계기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우리 경제가 번영한다. 민족내부에 생길 낙오자는 달리 구제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외국인의 국내기업 인수를 결코 불안하게만 보지는 말자.
/李承勳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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