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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그는 선약을 취소해야 했을까?


검찰이 지난달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국회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도 각기 벌금 액수는 달랐지만 함께 약식기소됐다.

검찰의 발표를 접한 여론은 비난 일색이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 '반칙을 일삼는 유통공룡들'이란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돈이 넘쳐나는 이들에게 고작 수백만원의 벌금을 매겼다는 이유로 검찰도 욕을 먹었다.

결국 기업 오너에 민감한 여론을 반영하듯 법원은 이들 4명이 모두 정식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곳저곳에서 박수소리가 들린다. 사법부가 돈의 힘에도 굴하지 않고 원칙을 지켰다는 칭찬도 들려온다.

이 같은 여론에 머릿속 한 켠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기업 오너들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함께 든다.

약식기소 당시 검찰 관계자는 "국가 원수급 출장은 '오너가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국회에서 출석을 요구한 당시에 일본과 태국,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는 신 회장의 일정도 언급했다. 당시 신 회장이 만난 인물은 수개월 전 만남이 잡혔던 잉럭 친나왓 태국 총리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투자청장과 부통령 등이었다. 신 회장이 기업인으로서 떠난 출장이지만 민간사절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측면도 무시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검찰에서도 이 점을 고려해 국빈급 약속과 겹친 일정은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신 회장은 벌금형이 아닌 정식재판을 받게 됐다.



물론 국감을 피하려고 부랴부랴 해외출장 일정을 만들어낸 누군가를 덮어주자는 말은 아니다. 또한 '벌금내면 된다'는 식으로 국민의 부름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기업에 무조건 면죄부를 주자는 얘기는 더욱더 아니다.

하지만 법원의 이번 결정은 재계에 엄격함을 넘어 무리한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업계는 물론 법조계 안팎에서도 1년 내내 빼곡히 차 있는 기업 오너의 경영스케줄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가 균형감을 잃고 정의를 무기 삼아 여론에만 편승한다면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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