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상업화가 진행된 서울 종로구 서촌 일대 지역에서 생활소음 문제로 인한 주민 이탈과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가게 주인과 주민들 간 분쟁이 이어지고 주민들이 집단 진정에 나서는 등 곳곳에서 갈등이 생겨나고 있지만 정작 서울시와 관할 자치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23일 종로구 옥인동 주민에 따르면 이른바 서촌에 포함된 옥인동과 누상동·누하동 주민 38명은 지난달 29일 주택가에 들어선 술집의 야간소음을 해결해달라는 공동 진정서를 김영종 종로구청장 앞으로 제기했다. 서명에 동참한 주민 김혜진(가명)씨는 "주민들이 그동안 산발적·개별적으로 소음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구청에서 아무런 개선 노력이 없어 결국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주택가였던 지역이 상업화되면서 이에 따른 소음으로 주민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해결해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진정을 통해서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옥인동 인근뿐만 아니라 서촌 일대 전역으로 집단행동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예고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구청에서 돌아온 답변은 "식품위생법상 일반 음식점은 음주행위가 허용되는 영업이어서 마땅히 규제할 근거는 없다"는 것뿐이었다. 기껏 구청이 취한 조치는 술집이 도로변에 내놓은 테이블을 야간에 안으로 들여놓으라는 행정지도가 전부였다.
이에 주민들은 늘어나는 가게와 관광객들의 소음을 피할 길이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술집과 음식점이 들어선 건물 2층에 거주하는 주민은 "웅성웅성하는 소리, 음악 소리, 손님들이 흥에 겨워 웃고 떠드는 소리, 직원을 부르는 소리들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3층에 사는 세입자도 지난주 결국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정상영업을 하는데 민원이 들어오니 가게 주인도 화가 나는지 반대로 주민들에게 항의하기도 한다"며 "지금도 인근에 주택을 개조해 옥상을 카페로 만들고 있는데 주변 집들은 소음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고 전했다.
구청과 시청은 그러나 소음 규제 기준 자체가 없어 별도의 대응에 나서지 않고 있다. 소음·진동관리법은 현재 사람의 목소리나 개 짖는 소리는 아예 소음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마련된 층간소음 규제 역시 발자국이나 충격음, TV 소리만 규정할 뿐 개나 사람 소리는 제외했다. 종로구청 환경과 관계자는 "공장 기계음이나 확성기 같은 기계를 통한 소리만 처벌할 수 있다"며 "대학로 일대에서 스피커를 켜놓은 채 진행하는 호객행위 등은 계도를 하고 있지만 서촌 일대 생활 속에서 나는 소음 문제는 다룰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한 30대 여성 주민은 "서울시가 서촌 일대에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한다고 주민 공모 재생사업을 시행한다는데 정작 이곳은 상업화에 따른 소음 문제로 원주민이 떠나고 있다"며 "정작 보이는 문제는 뒷짐 지면서 서촌의 주민 공동체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서촌이나 연남동 등 시나 구가 새로운 상권을 활성화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뒤따를 수 있는 문제에는 정작 손을 놓고 있어서 화가 난다"며 "주민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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