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투자컨설팅 업체 아서앤더슨이 우리 정부와 자산관리공사ㆍ산업은행 등이 추진하던 부실기업 채권 매각과 정부조직 개편, 기업 구조조정 컨설팅을 잇따라 따내던 시절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 '금융계 마당발'로 통했던 K씨가 지난 1997년 말 한국지사장으로 부임한 후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취업난이 극심하던 와중에 전ㆍ현직 재정경제부 장ㆍ차관과 산업은행 총재 등의 자녀를 직원이나 인턴으로 고용하고 고위 퇴직공무원들을 고문 등으로 영입해 로비 창구로 활용했다.
△고위층 자제 특채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 고려ㆍ조선시대에 왕족ㆍ공신이나 고위 관리의 자손ㆍ친척을 과거 등 시험 없이 관리로 특별채용하던 음서제(蔭敍制)가 있었다. 삼국시대에도 공신의 자손에게 관직을 주던 사례가 있지만 고려에서 제도로 확립됐다. 음서제는 고려 광종이 왕권강화를 위해 과거제를 도입(958년)하면서 약화되기 시작했으나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과거 급제자들로부터 실력으로 업신여김 당했지만 조선시대에도 음서 출신자가 과거급제자보다 훨씬 많았다.
△오늘날에도 음서제는 여전하다. 공직에서도 실력보다 '빽'을 중시해 파장을 일으킨 게 한두번이 아니다. 외교통상부는 2006년 응시자격을 완화해가며 현직 차관의 딸을 전문계약직 5급으로 채용했었다. 아서앤더슨에서 일했던 당시 차관의 딸은 1년반가량 외교부에서 일했으나 호사다마랄까. 아버지가 장관에 내정되자 특혜 문제가 불거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던 '공정한 사회'가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었느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결론은 장관 자리와 딸의 5급 자리를 맞바꾸는 것으로 끝났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연방 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고 있다. 2006년부터 중국 등 아시아ㆍ태평양 국가에서 고위층 자녀 특별채용 프로그램 '아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운영을 미끼로 기업공개 주간사 등으로 선정됐다는 의혹 때문이다. 한국ㆍ싱가포르ㆍ인도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단다. 경쟁사들의 제보가 있었겠지만 부패와 불공정 경쟁을 추방하려는 미국의 의지와 자정능력이 부럽다. 연루된 우리 공직자가 없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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