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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9월6일] <1184> 첫 세계 일주


1522년 9월6일, 에스파냐 남부 세비야 항구. 난파 직전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선원들의 몰골은 더 비참했다. 온 몸이 종기와 부스럼으로 뒤덮인 채 영양실조로 걸을 수도 없고 혀가 부어 말하기조차 어려웠다. 침몰 직전에 귀항한 이 선박의 이름은 빅토리아(Victoria)호. 정확하게 보름 모자라는 3년 전 미지의 서쪽바다를 향해 출항했던 마젤란 선단 다섯 척 중 유일하게 항해를 마치고 살아 돌아왔다. 인원 손실은 더 컸다. 출항할 때 9개국 출신 268명의 선원 중 생환자는 18명에 그쳤다. 마젤란처럼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은 극소수. 대부분 망망대해에서 굶주리고 병에 걸려 죽어나갔다. 선단 중 가장 작은 빅토리아호(85톤)만 돌아왔어도 항해는 소폭의 흑자를 남겼다. 빅토리아호에 가득 실은 정향과 후추 등 향신료가 선박 손실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비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는 돈보다도 더 큰 이익을 얻었다. 향신료 산지의 위치를 확인하고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는 발판을 구축했다. ‘태평양’이라는 이름도 이때 생겼다. 항해의 최대 난관이었던 미주대륙 남단의 복잡한 해협(마젤란 해협)을 지난 뒤 순풍이 부는 잔잔한 큰 바다를 만난 마젤란이 라틴어로 ‘Mare Pacificum(크고 평안한 바다)’라고 부른 게 태평양(Pacific)의 어원이다. 에스파냐뿐 아니라 유럽도 바다를 향해 도전하는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서쪽으로 끝없이 나아가던 배가 출항지로 되돌아왔다는 점은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진실을 입증해주는 대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각국은 앞 다퉈 선박을 건조하고 선원을 키웠다. 빅토리아호 귀항 486주년. 마젤란이 다녔던 태평양이 그대로인 것처럼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기회는 도전과 희생 속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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