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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국회광장서 영면의 길로…

■ 마지막까지 '국회 인연'<br>한평생 의회주의 신봉<br>"의정활동 열심히 하라" 항상 강조<br>장외투쟁때 여러차례 복귀 설득도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40여년 정치인생 무대는 국회였다. 6선 의원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라는 일생의 과업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장(場)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철저한 의회주의자였다. 김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최대 영광의 순간이었던 15대 대통령 취임식에 이어 영면의 길로 들어서는 마지막 의식인 영결식도 국회에서 열리게 된 것은 국회와의 이런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4수 끝에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2월 국회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함으로써 수평적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 동시에 의회 민주주의 완성시대를 열었다. 특히 사후(死後)로 가는 마지막 길을 국회로 택함으로써 의회주의 신봉자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국회는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미래의 전당”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위해 많은 공적을 남겼다”며 국회를 빈소 및 영결식 장소로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5ㆍ6ㆍ7ㆍ8ㆍ13ㆍ14대 의원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1961년 5대 민의원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생애 첫 금배지를 달았다. 3수 끝의 국회 입성이었지만 당선 사흘 뒤 5ㆍ16쿠데타로 의원선서도 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6대 의원 때부터다. 정치적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6대 국회 초반 6개월간 13차례나 본회의 발언을 함으로써 ‘달변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김 전 대통령은 후배 정치인, 특히 초선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큰 지도자가 되려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특히 국회 상임위 활동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라고 강조하며 격려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숱한 정치적 변곡점에서 국회를 통한 해결에 우선 순위를 뒀다. 오랜 야당 지도자로서 숱한 장외투쟁을 해왔지만 ‘원내외 병행투쟁’이 소신이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신군부의 집권 계기가 된 12ㆍ12사태에 대한 투쟁 노선을 놓고 야권 내 이견이 격화됐던 1984년 당시 이기택 민주당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등원을 촉구, 정면충돌한 것은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된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이끌었을 때도 국회 복귀를 훈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초 민주당 원내대표단이 예방한 자리에서 “국회의원은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원내에서 싸우라고 국민이 뽑아준 것”이라며 “수십년 나의 경험과 의회주의 원칙을 보더라도 국회는 오래 비우지 않는 게 좋다”며 민주당의 등원을 조언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김 전 대통령은 6선 의원 출신으로 의회주의자이시고 평생을 국회에서 활동하신 분”이라며 “고인의 뜻을 받들어 우리 국회도 의회민주주의 절차가 존중되고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민주의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평생 정치의 중심 무대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철저한 의회주의자”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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