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최소 자본금을 1,000억원 수준으로 잡은 것은 높은 수준의 진입장벽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오프라인 지점이 전혀 없는 인터넷은행의 성격상 업무 리스크가 큰 만큼 이에 비례해 자격요건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보보안 사고 등에 대비할 역량이 있는 기업에만 인터넷은행의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자칫 인터넷뱅킹 보안 사고라도 발생하면 걸음마 단계인 핀테크산업 자체가 붕괴할 우려가 있다는 현실적 고민도 깔려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 보면 금산분리 규제 완화 등을 통해 풀뱅킹(full banking)에 가까운 인터넷은행을 도입하기 위해서라도 자격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며 "자본금 규제를 인터넷은행 예비후보를 거르는 필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은행의 공익성과 안정성 확보해야=최소 자본금 1,000억원은 어지간한 핀테크 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른 금융업종의 자본금 규모와 비교하면 확연하다. 저축은행의 최소 자본금은 120억원(본점 특별시 소재 기준), 보험사는 300억원이다. 인터넷은행의 업무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1,000억원의 최소 자본금은 다소 의외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망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시장진입을 원천 봉쇄했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당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핀테크산업 성장을 위해 전자화폐 등의 업종 자본금 규제는 기존 대비 절반으로 깎기로 했지만 인터넷은행만큼은 다르다는 것이다. 여수신 등 은행의 핵심 업무를 인터넷은행에 허용하게 되면 시장 파급이 막강한 만큼 이에 맞는 위상과 책임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지방 및 저축은행과 달리 전국 단위의 영업이 허용된다. 금융계 전체에 혹독한 시련을 안겼던 개인정보유출 사고의 트라우마도 작용했다. 금융위원회는 진입요건과 관련해 해외 사례도 참조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해외 주요국의 인터넷은행 법적 자본금 요건은 (일반 은행보다) 낮지만 실제로는 건전성 등을 이유로 법적 요건보다 10배 정도 높아야 당국이 사업승인을 해준다"며 "사실상 일반은행과 인터넷은행의 자본금 요건이 거의 같다"고 강조했다.
◇금산분리 완화, 업무범위 넓히려는 사전포석=인터넷은행과 관련한 최대 이슈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4%로 제한한 금산분리 완화 여부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인터넷은행의 자본금 문턱을 높여 예비 후보자의 폭을 좁혀놓은 만큼 어떤 식이든 금산분리 규제도 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야 기업의 구미를 당겨 인터넷은행 도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당국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4%에서 20% 수준까지 높이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진입규제 강화로 사고 위험성이 줄어들 공산이 커 인터넷은행의 업무 스펙트럼도 넓어질 여지가 있다. 시장에서는 기업 여신의 제한 범위와 함께 외국환이나 신탁업무, 보증과 어음 인수 업무 등이 어느 선까지 허용될지가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IT회사와 금융회사의 제휴 움직임이 물밑에서 본격화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하나은행이 다음카카오와 손잡고 비즈니스 모델 및 플랫폼 구축 등에 협력하기로 한 것도 이런 큰 흐름에 미리 대비하는 성격이 강하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일반 기업 입장에서는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된다고 해도 지분 제한이라는 걸림돌이 여전하고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금융회사와의 파트너십 구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금융업을 포함한 이종업종 간 합종연횡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국회 높은 벽이 최대 관건=하지만 인터넷은행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각종 영업규제, 과당경쟁으로 이미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국내 금융환경 등이 비관론의 배경이다.
특히 금산분리를 완화할 경우 은행이 기업 사금고로 전락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당국은 인터넷은행의 업무 제한 등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지만 동양 사태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여지도 있다. 여기에 이번 정권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가 9%에서 4%로 강화된 점도 부담이다. 국회의 문턱을 넘기가 만만치 않다고 보는 연유다. 일각에서는 국내 은행의 각종 수수료가 저렴하거나 아예 부과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해외와 달리 인터넷은행의 이점이 별로 없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한 금융계 인사는 "인터넷은행 도입으로 금융권이 들떠 있지만 '속 빈 강정' 같은 결론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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