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으로 살아난 미국 자동차 업계가 경영악화의 주요인으로 꼽혀온 연금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에 나선다.
총대는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가 멨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대니얼 애커슨 GM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열린 주총에 앞서 블루칼라 퇴직자들의 연금수령 권리를 사들이는 방안을 전미자동차노조(UAW)와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애커슨은 "당장은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는 이미 발표한 사무직 퇴직자들의 연금제도 개선방안을 확대 적용하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GM은 지난 1일 사무직 퇴직자 또는 연금수령 권리가 있는 배우자 등 4만2,000명에게 매달 받는 연금 대신 일시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또 전체 11만8,000명인 사무직 퇴직자들에 대한 연금관리 업무를 보험사인 푸르덴셜파이낸셜에 아웃소싱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90억달러에 달하는 퇴직연금 자산을 푸르덴셜에 넘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GM 사무직 연금 대상자들은 GM이 아닌 푸르덴셜로부터 연금을 받게 된다.
GM은 이 같은 연금제도 변경으로 260억달러의 연금채무를 축소했다. 댄 아만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사무직 퇴직자) 연금 업무를 푸르덴셜에 이관해 더 이상 GM이 이 문제로 힘겨운 딜을 해야 하는 일은 없어졌다"고 홀가분한 심경을 토로했다.
과도한 연금부담은 GM 경영의 발목을 잡아왔다. GM의 연금지급 대상자는 50만명이 넘는다. 특히 GM이 현재까지 책임져야 하는 연금규모는 1,090억달러(127조원)에 달한다. 미 언론들은 GM이 차 한대를 팔 때마다 1,500달러가 연금 몫으로 분류된다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과거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마련된 GM의 연금제도는 파격적이다. GM 근로자들의 연금수령액은 같은 기간을 근무한 대학 교수, 군인출신자들보다 많고 별도로 수만달러에 달하는 자동차 할인 쿠폰도 받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일본ㆍ유럽ㆍ한국 등의 자동차 업체들이 추격하면서 GM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연금 충당에도 차질을 빚자 자산매각이나 채권발행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일이 매년 벌어졌다. 결국 GM은 2000년 중반 급격한 경영악화에 이어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파산 위기에 내몰렸고 정부의 구제금융에 의지해야 했다.
GM은 이후 세계 각지의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대량 감원하는 구조조정 등을 단행했지만 연금제도에 대해서는 노조의 반발에 막혀 사실상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해온 상태였다. 1일 사무직 연금제도 개선을 발표했을 때 GM의 주가가 5% 이상 오를 정도로 이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높다. 신용평가사 피치의 애널리스트 스티븐 브라운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다른 업체들에서도 연금지급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이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포드 역시 9만8,000명의 사무직 퇴직자들로부터 연금 수령권을 사들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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