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차 양적완화(QE3)를 발표한 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세계경제에 후폭풍이 몰아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미국뿐 아니라 6일 유럽중앙은행(ECB)이 무제한 국제매입을 발표한 데 이어 일본ㆍ중국 등 주요 경제권이 일제히 경기부양을 위해 돈보따리를 풀면서 부작용 역시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QE3 등 양적완화의 여파로 홍콩 등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버블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특히 일본ㆍ브라질 등은 자국통화 절상(달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하락을 막기 위해 시중 유동성을 대폭 풀거나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환율전쟁이 또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 정크본드나 금, 신흥국 채권 등 투기자산으로 글로벌 자금이 쏠리면서 금융시장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등장했다. 반면 고용창출ㆍ경기회복 등의 효과는 가시화되지 않아 인플레이션 등 거품만 양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일단 시중에 통화를 공급하는 QE3의 가장 큰 부작용은 인플레이션이다. 1, 2차 양적완화 때도 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인 바 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빌 그로스 최고경영자(CEO)는 18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살고 있다. 1년 내 인플레이션이 2.5%에 달하거나 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날 미 국채 10년물과 10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간 금리차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레이크이븐인플레이션율(BEI)'로 불리는 이들 금리차는 이날 2.73%포인트로 2006년 5월 이후 6년4개월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이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보여주는 핵심 시장지표다.
두 차례의 양적완화를 거치면서 FRB는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QE3가 실시되면 이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시중에 돈이 풀렸다는 것이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14일 발표된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0.6% 올라 2009년 6월 이후 3년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ECB의 경기부양과 관련,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악마의 작품(work of devil)'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날 ECB의 시중 통화공급에 대해 "파우스트에서 악마로 나온 메피스토펠레스가 바보로 변장해 왕에게 화폐를 대규모로 발행하라고 설득하는 장면이 생각난다"며 "왕은 화폐를 발행해 왕국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만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비참한 결말을 맺게 된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면서 금값은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날 뉴욕시장에서 12월 인도분 금값은 온스당 1,771.20달러로 2월29일 기록했던 연중최고가 1,790달러에 근접했다. 금값은 QE3 발표 이후 2% 정도 올랐다.
금값 상승을 예상하는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프란시스코 블랜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글로벌 투자전략가는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금값이 오는 2014년 말까지 꾸준히 올라 온스당 2,400달러선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FRB가 2014년까지 주택저당채권 매입을 지속하고 연말까지 국채매입도 계속한다는 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블랜치는 FRB가 고용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양적완화를 계속하겠다고 했는데 2014년까지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는 금값 상승의 강력한 신호라고 설명했다. 영국계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이코노믹스도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모건스탠리 역시 내년까지 금값이 온스당 1,800달러선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돈보따리를 푸는 미국을 바라보는 신흥국들의 심기는 불편하다. 1, 2차 양적완화 결과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신흥국들은 환율이 크게 절상돼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고 글로벌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물가관리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신흥국들은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양적완화는 미국경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개도국 수출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적완화 조치로 브라질에 달러화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며 "브라질산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적절한 환율방어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라질은 기준금리를 9번 연속 하향 조정하며 경기부양에 나선 상태다. 양적완화로 글로벌 자금이 밀려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한다면 정부의 부양 노력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브라질은 3,787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 대부분이 달러화 자산으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멕시코 페소화는 QE3 발표 후 이틀 만에 2.4%나 가치가 급등했다. 올 들어 전체로는 6.4% 평가 절상됐다. 알베르토 베르날 불틱캐피털마켓픽스드인컴 헤드는 "멕시코 채권과 페소화 매수가 늘어날 것"이라며 올해 말 멕시코 채권 10년물의 수익률이 기존보다 0.7%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은행(BOJ) 역시 19일 금융통화회의를 열어 자산매입기금 규모를 55조엔으로 기존보다 10조엔 더 늘린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QE3에 따른 엔화강세 기조를 저지해 수출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홍콩 금융당국도 FRB의 QE3 발표 직후인 13일 대출만기 제한 등 각종 부동산 규제대책을 내놓았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2009년 이후 90%나 급등한 상태다. 노먼 챈 홍콩금융관리국 최고경영자는 이와 관련, "미국의 QE3는 홍콩에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에 대해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선제 대응에도 약발은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지난주 말(15~16일) 현재 홍콩의 10개 주요 주거지 거래량은 불과 일주일 만에 11%나 증가하면서 부동산 버블 우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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