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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푸어 대책이 푸어를 구할까?


'○○푸어(Poor)'라는 말은 의식주를 위해 꼭 대출을 받아야 하고 그 대출을 갚기 위해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고달픈 직장인들을 비유해서 자주 쓰인다. 가장 많이 알려진 하우스푸어에서부터, 결혼자금 대출로 빈곤해지는 웨딩푸어, 계획된 국책사업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나중에 받을 토지보상비로 갚겠다며 대출을 받았다가 빚에 시달리는 랜드푸어, 급등한 전세보증금 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렌트푸어에 이르기까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우리가 처한 경제적ㆍ사회적 상황은 더 다양한 '푸어'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여건 근본적 변화엔 관심 소홀

이런 푸어 신드롬 때문일까, 대선을 앞둔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에서도 '푸어 대책'이 포함돼 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하우스푸어에 대해서는 각 당이 공약을 발표했거나 내세울 해법을 고심 중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지난 23일 하우스푸어 주택의 지분 일부를 공적금융기관에 넘겨 부채를 갚되 주택 소유자가 지분매입금의 6%에 해당하는 사용료(이자+수수료)를 매년 지급하는 방식의 대책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이는 "아직 나랏돈을 집어넣을 단계는 아니다"는 정부 당국의 견해와 달라 실제 도입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하우스푸어 대책은 정녕 하우스푸어를 구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하우스푸어란 가처분소득 대비 대출원리금 상환액이 일정 비율 이상인 사람, 주택담보가치가 대출금을 밑돌거나 대출을 연체하고 있는 사람 등을 가리킨다. 투기 목적으로 집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도, 집 한 채가 전재산인 사람인데 집값이 떨어진 사람도 모두 자신을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하우스푸어는 규정하기에 따라 그 대상과 범위가 매우 유동적이다.

정부는 이들 모두를 도와야 할까. 모두 도울 수 있을까. 정부의 개입 방식도 구분이 필요하다. 하우스푸어를 양산한 제도적 환경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하우스푸어인 개인들을 도울 것인가. 개인들을 지원하는 정부의 개입에는 그 대상의 범위와 원칙이 필요하다.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이 하우스푸어 문제에 직접 개입한 경우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이 위기 상황에 국한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최근의 논의는 이러한 상황판단이나 구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우스푸어를 양산한 시장 여건의 근본적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우스푸어 문제는 지금이라도 주택거래가 활성화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자본이득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주택소비 구조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없이 거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거래가 안 되는 주택에 정부나 금융기관이 개입하는 것도 적절한 방안은 아니다. 자칫하면 거래나 처분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대책은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주택의 소유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데 이는 자칫 거래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주택 처분시 소유자 한 사람만의 의사결정으로 해결되던 것이 지분을 가진 금융기관과 정부(공적자금 투입주체), 세입자까지 의사결정에 연루되기 때문이다.

자칫 거래·처분만 어렵게 만들 수도

최근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는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 back)'개념은 한 시중은행이 시행하겠다고 밝힌 '트러스트 앤 리스백(trust & lease back)'제도와 맥을 같이 한다. 부동산에 자산이 많이 묶여 있지만 상대적으로 유동화 수단이 적은 한국 사회에 매우 필요한 조치다. 일부 비판이 있지만 금융기관별로 이와 유사한 상품들이 개발ㆍ보급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시도들은 하우스푸어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국내 부동산시장 환경을 개선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들이 '하우스푸어 대책'이라는 정치적 포장으로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아우르려는 정치권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무작위로 쏟아져 나오는 푸어 대책이 정녕 푸어들을 구할 수 있는지,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 체질 개선을 위한 근본 대책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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