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개혁세력의 집권이냐 군부 엘리트 정치의 재등장이냐를 결정할 인도네시아 대선이 5일(현지시간) 공식 선거운동을 모두 마치고 오는 9일 1억9,000만 유권자의 선택만 남겨뒀다. 선거를 이틀 앞둔 현재까지도 서민 후보 조코 위도도(조코위·투쟁민주당연합)와 군 출신의 프라보워 수비안토(대인도네시아운동당) 간의 박빙 승부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 결과는 인도네시아 정치와 경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역사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코위 후보와 프라보워 후보는 5일 밤 열린 제5차 TV토론을 끝으로 32일간의 선거 운동을 마무리했다.
이번 대선은 지난 2004년 도입된 직선제로 당선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현 대통령이 3선 연임제한 규정으로 출마하지 못하고 그의 소속당(민주당)이 대선후보를 내지 못함에 따라 누가 당선되든 인도네시아 역사상 '첫 민주적 정권교체' 사례로 기록되게 된다. 여기에 2011년 '아랍의 봄' 실패, 최근의 이라크 사태 등 올 들어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이슬람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전세계적으로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에 후보로 나선 조코위와 프라보워는 살아온 이력이 뚜렷하게 대비된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판 '보혁대결'의 완결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바 중부 도시 수라카르타(일명 '솔로')의 빈민가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조코위는 19년간 가구 사업가로 일하다 정치에 입문, 솔로 시장과 자카르타 주지사를 거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이 기간에 의료보험 확대, 빈민을 위한 새마을 조성 등 친서민 정책을 잇따라 성공시켜 '인도네시아판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으로 불린다.
반면 프라보워는 1998년까지 31년간 국가를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 수하르토 정권 시절에 특전사령관을 지낸 군 장성 출신이자 수하르토의 딸을 아내로 삼았던(현재는 이혼) 인물로 대표적 군부정치 엘리트로 꼽힌다. 그의 아버지 또한 수하르토 정권의 경제정책을 입안한 재무장관을 지냈다.
선거 초반에만도 반기득권 개혁을 부르짖은 조코위의 여유 있는 승리가 점쳐졌으나 최근 프라보워의 맹추격으로 한때 39%포인트로 벌어졌던 지지율이 3%포인트대(6월30일 기준)까지 좁혀졌다. 기업가인 동생의 전폭적 재정지원과 거대 언론재벌의 편파보도를 등에 업은 프라보워 진영이 "조코위는 중국계 기독교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등 대대적인 네거티브 선거전을 벌인 것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국민 및 저학력 빈민층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초 정치중립을 약속했던 집권 민주당이 최근 프라보워 지지를 선언하는 등 인도네시아 기득권 보수진영이 프라보워를 중심으로 총결집하는 양상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정치경험이 부족한 조코위가 전문적 선거 캠페인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반면) 프라보워는 압도적인 재력과 방송 등 우호적 환경으로 선거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 같은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조코위가 승리를 거둬야 인도네시아가 진정한 변화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선거공약에는 큰 차이가 없다. 제조업 확대를 위한 인프라 개선과 농업생산성 증대를 위한 지원은행 설립, 외국인 투자 확대를 위한 제도정비 등을 두 후보가 공통적으로 약속하고 있다. 특히 둘 다 서민 표를 얻기 위해 민족주의 정책을 강조해 보호주의 경제로 회귀할 우려가 높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평가했다.
다만 그동안의 정치이력과 세부공약을 보면 조코위의 규제개혁 정책이 좀 더 실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들은 조코위의 당선을 지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실제 최근 도이체방크가 주요 외국인 투자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프라보워가 당선될 경우 13%만 인도네시아 자산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반면 56%는 매각의사를 나타냈다. 반면 조코위가 이길 경우 74%가 인도네시아 자산을 사고 6%는 팔겠다고 응답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