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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공룡부처 잔혹사

옛 상공부 규제 없애자 제조업 펄펄… 모피아 건재한 금융은 우물 안 개구리 <br>미래부 민간활력 높일 펌프 역할 해야 장관 제대로 뽑고 장수해야 패착 면해


정부조직 개편이 마무리되자 관가엔 환호와 한숨이 교차한다. 15년 만에 통상 기능을 되찾은 지식경제부야 잔칫집이지만 외교통상부로선 그야말로 '멘붕(멘털 붕괴)'이다. 외교관에서 졸지에 일반 공무원 신분으로 전락한 데다 올 겨울엔 세종시로 짐을 싸야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란다. 큰 그림은 그려졌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처럼 역시 중요한 것은 부처별 실무 기능과 역할 조정이다. 부처 내 실ㆍ국별 조직 편제에 따라 산하기관까지 달라진다. 벌써부터 몇몇 부처가 자산 90조원의 우정사업본부 관할권에 군침을 흘리는 모양이다. 당장 조직의 운명과 자신의 밥줄이 달라지니 공무원 입장에서야 이보다 더한 관심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당분간 일손이 잡히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조직은 최고 통치자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5년마다 국정 기조가 달라지니 새 지도자가 개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역대 정부마다 예외가 없었다. 김영삼(YS)ㆍ김대중(DJ) 시절엔 세 차례나 단행했다. 문민정부 이후엔 이번이 아홉 번째다. 으레 정부 혁신으로 포장됐지만 불행히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큰 정부면 어때'라던 참여정부나 '작고 유능한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 역시 공무원이 일 잘하고 효율적인 정부라는 칭찬은 별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공무원 숫자라도 줄인 것도 아니다. 정확히 1,273명 늘어났다. 부처 이기주의와 칸막이벽 철폐는 수없이 들어왔건만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이번에 부활한 게 경제부총리다.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다.

경제부총리 재도입도 눈에 띄지만 역시 개편의 핵심은 미래창조과학부에 있다. 거창한 이름을 지닌 부처를 신설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창창해진다면 백 번이라도 만들어야겠지만 어쩐지 미덥지 못하다. YS 시절 재정경제원 같은 공룡부처 잔혹사가 떠오르니 하는 말이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의 결합으로 탄생한 재경원의 방만한 조직과 공무원 간 화학적 결합 부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원인(遠因)의 하나로 지목될 정도가 아닌가. 대략 5~6개 부처 업무 일부를 떼내 합친다는 구상인데 자칫하면 잡탕이 되기 십상이다. 차라리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충실히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통치권 차원의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어깨에 힘 들어갔다간 십중팔구 패착이다. 참여정부 시절 갑자기 힘 깨나 쓴 국정홍보처의 말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은 비단 공무원 그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더구나 정부가 비대해진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로 큰 정부가 불가피한 마당에 이번엔 두 개 부처가 늘어났다. 한 곳은 그야말로 공룡이다. 부총리제도 부활했다. 공공부문의 덩치가 커지면 자칫 규제부터 늘어날 수 있다. 국민 부담도 늘 소지가 다분하다. 경제 분야라면 더더욱 그렇다. 경제 부처의 입김이 세지면 민간의 활력은 약화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옛 상공부 시절엔 업종별로 시시콜콜한 규제가 사라지자 제조업 경쟁력은 펄펄 날았고 반대로 이른바 모피아가 건재한 금융산업은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수 싸이가 세계적으로 뜨고 소녀시대 같은 걸그룹이 일으킨 한류 바람이 어디 문화부 공무원이 일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인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정부 부문 경쟁력은 세계 최하위였다. 정책 투명성 133위, 규제 114위, 지출 합리성 107위라는 순위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정부조직 개편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공공부문 서비스 질을 개선해 고객인 국민 만족도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게 최종 목적이다. 공공 서비스 제공과 규제라는 독점적 권한을 여하히 활용하느냐에 따라 정부의 성패가 갈린다. 공공조직 자체 효율성을 제고하고 민간의 활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5년 뒤 또다시 개편의 도마에 오를 것이다. 그나마 장관을 제대로 가려 뽑은 뒤 믿고 오래 맡기는 것이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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