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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3수' 박근혜 무엇이 달라졌나

2002- 당내 민주화 요구하며 탈당<br>2007- 경선룰 갈등불구 승복<br>2012- '불통' 이미지 부담 속 비주류 경선룰 변경 요구 일축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이번 대통령선거는 세 번째 도전이다. 지난 2002년 처음 당내 경선 출마를 선언한 후 10년간 절치부심한 셈이다. 그동안 박 전 위원장은 당내 경선 당시 3위권 주자(2002년)에서 1ㆍ2위를 다투다가(2007년) 대세론(2012년)을 확립했다. 달라진 위상은 그를 유력한 대선 주자로 만들었지만 그만큼 당 안팎의 견제와 비판도 거세졌다.

◇당내 개혁 주장했으나 경선 불참=박 전 위원장은 한나라당 부총재로 선출된 2001년에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는 이회창 총재가 대세론을 이뤘고 박 전 위원장은 지지율에서 2위권에도 속하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은 이 총재가 '제왕적'이라고 비판하며 대선 전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요구했다. 특히 그는 당시 민주당이 주장했던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을 촉구했다. "들러리 서는 경선은 하지 않겠다"며 이 총재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2002년 3월 전격 탈당을 선언한다. 박 전 위원장은 당시 당내 비주류ㆍ개혁 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20~30대 젊은 유권자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은 지지율이 3위권에서 주춤했고 그는 그해 10월 복당했다. 이후에는 경선을 통해 선출된 이 총재를 도와 대선을 치렀다.

◇경선 룰 갈등 끝 패배=5년 뒤 박 전 위원장은 이명박 당시 후보와 함께 1ㆍ2위를 다투는 유력 주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두 후보는 경선 룰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박 전 위원장이 "이런 식으로 하면 경선도 없다"도 한 날 이 후보는 대선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식이었다.

박 전 위원장은 결국 경선에 참여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그러나 당시 박 전 위원장은 결과를 보자마자 승복했다. 이를 통해 그는 대선 이후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비주류 요구에도 경선 강행=올해 현재 박 전 위원장은 여야 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안철수 변수'를 제외하면 여야를 통틀어 그를 위협하는 요소는 전무하다.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주자의 경선 룰 변경 요구를 일축하면서 '불통'이라는 지적을 받았기도 했다. 그는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의 경선 불출마 다음날인 10일 '변화ㆍ희망ㆍ미래'를 키워드로 대선 출사표를 던진다.

지난 10년간 그의 정책도 변화했다. 이론에서 현장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2007년 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도왔던 한 핵심 인사는 "2002년에는 정책을 밝힐 기회 자체가 없었고 2007년까지는 경제성장률이 높았음에도 정부의 잘못으로 부작용이 속출했기 때문에 줄푸세를 내놓았지만 이론을 중시한 경향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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