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글로벌 신용경색에 따른 원화 자금시장 불안으로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은행채ㆍ양도성예금증서(CD) 등 중장기 시장성 수신 시장이 얼어붙고 이에 따라 콜 자금 등 단기자금 조달 비중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매달 원화 유동성 비율을 맞추느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 시중의 모 은행은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일일 단위로 입출금이 가능한 수시입출식예금(MMDA)에 5%대의 금리를 제시해 돈을 끌어모으는 등 하루하루 돈 모으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금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은행권의 단기 자금조달 비중이 늘어나 미스매칭 우려가 커지고 조달비용도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유동성 비율 때문에 허덕허덕=은행은 당국의 원화 유동성 기준에 따라 유동성 비율을 10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3개월 이하 단기부채 대비 3개월 이하 자산 비율이 매달 100%를 넘겨야 하는 것이다. 은행권으로서는 3개월 이하 부채나 채권은 당국 규정상 자산이 아닌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가급적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 만기 3개월이 넘는 부채나 채권을 발행한다. 자금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은행채나 CD 시장에서 중장기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지만 최근처럼 시장이 경색됐을 때는 조달 자체가 불가능하고 이에 따라 콜 등 단기거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유동성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모 시중은행의 자금담당 관계자는 "은행권이 원화가 모자라 당장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중장기 자금조달 시장이 막히고 단기로 자금이 돌아가면서 원화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급급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비율 완화 등 요구 목소리도=은행권은 지금은 자금시장이 외부 충격으로 붕괴된 상황인 만큼 유동성 비율 완화 등 당국의 긴급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외화유동성 비율 기준은 85%인데 원화유동성 비율은 100%를 고수하고 있어 형평성 측면에서도 어긋나고 있다"며 "위기상황인 만큼 당국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는 "모 은행이 원화 유동성 지급 불능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는 진짜로 지급할 원화가 없다는 게 아니라 단기 부채가 많아지면서 원화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가 힘든 것이 와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그동안 원화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 3개월 이하 CD 발행을 자제하고 4개월ㆍ5개월ㆍ6개월 등의 CD를 발행해왔지만 지난 9월 리먼 사태 이후로는 은행채 금리가 급등하고 이에 따라 CD 금리와의 스프레드가 현격히 벌어지며서 CD 시장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자금경색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9월 이전만 해도 은행들은 부채로 잡히지 않는 CD 4개월물 등의 발행을 통해 원화 유동성 비율을 맞춰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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