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위기 이후 한화그룹은 두산과 함께 급성장한 양대 그룹이었다. '빅3 보험사'였던 대한생명을 인수한 것도 그랬지만 그룹 전반에 걸쳐 확장 속도가 확연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한화큐셀 인수를 마지막으로 한화그룹의 시계는 멈춰있다시피 했다.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물론 지배구조에서도 밝지 못한 모습이 동시에 드러났다. 특히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오는 화학·방산 부문의 혁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그룹 안팎에서 불거졌다. 하지만 정작 이를 속도감 있게 결정하고 해결할 주체가 없었다. 오너의 부재 속에서 한화그룹은 속만 앓아야 했다. 2년 후인 지난해 여름 이후 한화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8월 KPX화인케미칼이 한화에 인수됐고 10월에는 ㈜한화와 한화테크엠의 소규모 합병이 이뤄졌다. 이는 서곡에 불과했다.
지난해 11월 경영에 복귀한 김승연(사진) 한화그룹 회장은 '빅딜'을 발표했다. 무려 2조원을 들여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어 12월에는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의 통합 계획이 공개됐고 이후에도 한화폴리드리머의 일부 사업부 매각, 독일 자동차 부품사 하이코스틱스 인수 등의 소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중후장대형 사업 위주로 운영돼온 재벌그룹의 행보라기에는 놀라운 속도였다. '스피드 한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재계에서는 이에 대해 한화의 조직문화를 스피드의 첫 번째 비결로 꼽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화가 군대 같은 조직문화 때문에 많은 지적을 받았는데 군대는 제대로 목표만 설정해주면 빠르고 강한 실행이 가능한 조직"이라며 "경영에 복귀한 김 회장이 그룹 전체의 방향을 설정해주자 이 같은 장점이 발휘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오너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인 빠른 의사 결정과 일사분란함이 그룹에 뚜렷한 상승 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실제로 김 회장은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강점은 키우고 단점은 버리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그룹의 주력 사업이지만 규모의 경제 실현, 기술력 확보가 필요한 화학·방산 부문에서는 삼성 4개 계열사 인수에 승부를 걸었다.
한화는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인수로 석유화학사업 부문 매출규모가 18조원에 이르게 됐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을 제치고 국내 1위로 올라설 수 있는 수준이다. 방산 부문의 경우 방위사업 자체의 규모도 키울 수 있게 됐지만 기존의 탄약·정밀유도무기 중심에서 자주포·항공기와 함정용 엔진·레이더 등 차세대 방위사업과 로봇무인화, 초정밀 공작기계 등 미래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화학·방산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기는 했지만 소재 부문에서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른 '더하고 버리기' 전략이 단행됐다.
지난해에는 제약 계열사인 드림파마와 한화L&C가 매각됐다. 이미 그룹 차원의 사업재편 계획이 어느 정도 구체화한 상황에서 주력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한화폴리드리머의 필름시트·코팅막재 사업부도 올해 1월 희성전자에 매각됐다. 본입찰 후 약 1개월 만에 이뤄진 신속한 작업이었다.
복귀 후 약 4개월간 쉴 새 없이 그룹 재편 작업을 벌여온 김 회장은 내부적으로 "한화에 지난 시간이 어려웠지만 멀리 보면 전화위복의 기회다. 우리가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사업에 더 집중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자"고 임직원들을 다독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상반기 중으로 삼성 4개 계열사의 인수 작업을 완료하고 조직 융합에 집중할 계획이다. 인수 작업 자체도 속도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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