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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올해 안에 보험료 인상은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보험 적자가 심각한 상황이기는 하나 국민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자동차보험료를 인상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자동차보험시장의 요율 자유화는 지난 1994년 시작돼 2001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개방됐다. 이 말은 보험사가 신상품을 알아서 개발하고 가격도 나름대로 책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 관계자가 공개석상에 나와 가격을 통제하는 일이 횡행한다. 정권교체기마다 자동차보험이 지지율 유지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이른바 '5년 주기설'도 나온다.
법은 자율을 보장하지만 실질적 자율은 없는 상태다. 이러한 형식적 자율화는 자보시장의 근간을 뒤흔든다. 자보시장이 완전 자유화된 2001년 이후부터 자보시장 적자규모가 더욱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뿌리부터 잘못됐다는 방증이다.
자보시장의 정상적 발전을 위해서는 형식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손보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시장이 발전하려면 자유경쟁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자보시장은 전형적인 폐쇄시장"이라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 피해로 귀결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제도'=자보시장을 놓고 '겉 다르고 속 다르다'라는 표현이 곧잘 쓰인다. 자보시장이 가진 양면성 탓이다.
자보시장은 자율경쟁이라는 겉옷을 입었지만 딱 거기까지다. 가격결정 권한은 '엉뚱한 곳(금융당국)'에 있고 그 결과 보험사는 가격변동 요인인 손해율이 치솟아도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가 없다. 또 신상품을 개발하려면 당국에 신고부터 해야 하니 제대로 된 경쟁은 이뤄지지 않는다. 자보시장의 행보가 게걸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원인은 국내 자보시장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보험을 둘러싼 소비자와 보험사 간 인식의 괴리는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과 임의보험으로 구성돼 있다. 자동차를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빠짐 없이 자동차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다만 가입자의 처지에 맞게 보험의 세부사항을 임의로 선택(특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사회적 여론은 다르다. 자동차보험을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험사가 손해율 악화를 근거로 보험료를 인상하려 하면 여론이 저항하는 이유다. 자보시장에서 손해율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형 손보사의 한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을 놓고 주기적으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자동차보험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소형 손보사 존립 위기=자동차보험의 천문학적인 누적손실, 그리고 일부 중소형 손보사의 존립위기는 자동차보험의 형식적 자율화가 초래한 또 다른 그늘이다.
자보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자동차보험 신상품은 신고제로 이뤄진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담은 상품을 당국에 신고해도 보험료 상승이 전제돼 있다면 어김없이 퇴짜를 맞는다. 이렇다 보니 보험사들의 신상품 개발의지는 반감된다. 경쟁은 사라지고 시장에는 엇비슷한 상품만 남게 된다. 결국 소비자는 자본력과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사로 몰리게 되고 중소형사의 입지는 좁아진다. 특히 온라인 자보시장의 성장은 중소형사의 사정을 더욱 힘들게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ㆍ4분기 말(4~6월) 현재 전체 손보업계 평균 합산비율은 103.22%지만 중소형사인 MG손보(109.32%), 롯데손보(108.65%), 한화손보(107.35%) 등은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반면 동부화재(101.64%), 현대해상(101.78%), 삼성화재(102.13%) 등 상위사는 안정권에 머물고 있다. 합산비율은 순사업비율과 경과손해율을 합한 것으로 보험사의 수익성 지표로 활용되는데 통상 100%를 넘기면 영업손실이 난 것으로 본다.
한 소형 손보사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 자동차 전용 보험사인 하이카다이렉트가 종합손보사로 전환을 시도했는데 이는 자보시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증거"라며 "중소형사의 경우 장기상품을 팔려고 해도 팔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 생존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의ㆍ의무보험 이원화 고민해야=결국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자보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공정경쟁을 담보하고 적정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쟁을 막는 형식적 자율화를 떨치고 자유경쟁을 통한 시장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자동차보험이 의무보험과 임의보험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감안해 보험제도를 이원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자동차보험 내에서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의 경우 감독당국의 규제를 강화하되 임의보험은 보험사에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해 경쟁활성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의 기승도 박사는 "자동차보험의 자유화 취지와 자동차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각을 반영해 자보시장 경쟁구조를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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