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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의 남성학] 퇴출 궁녀

성은 입지못한 궁녀들 동성애도

‘현종의 말세, 처음 선발되어 들어간다 / 들어갈 때는 16세. 지금은 60이 된다 / 평생 결국 독수공방으로 지내는구나.’ 중국의 시인 백거이가 쓴 ‘상양의 백발인’이란 시로 궁녀의 일생을 노래한 내용이다. 이처럼 궁녀는 어려서 입궐하여 왕의 은총을 받지 못하면 평생 독수공방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이었는데, 우리나라 역대 조정의 궁녀 수는 대략 600여명이었다. 궁녀는 일단 궁에 들면 종신제였지만 예외적으로 방출된 사례도 있었다. 이중 상방 기생이나 약방기생, 소주방 등에서 일하던 궁녀들은 퇴출 후에 은밀히 술집을 차렸는데 궁녀로서 법도와 체면을 지키면서 술을 팔아야 했기에 이색적 풍조를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남녀 내외가 깍듯했던 내외 술집이 그것으로, 손님이 이리 오너라 외치면 ‘손님께서 거기 있는 자리를 깔고 앉아 계시라고 여쭈어라’ 한다. 그럼 ‘술상 내보내시라고 여쭈어라’ 하면 ‘차려놓았다고 여쭈어라’ 응답한다. 이런 식으로 가공의 심부름꾼을 가운데 두고 대화를 하며 술을 마시고 값을 물어 상위에 놓고 ‘잘 먹고 간다고 여쭈어라’ 하며 나간다. 이렇게 술 파는 주모는 머리카락 하나 나타내지 않고 술을 판다. 삼엄한 내외풍습을 따르면서도 궁녀의 법도를 지켰으니 눈물겹기만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궁녀도 있었다. 궁에 갇혀 성은도 입지 못한 궁녀들은 해소할 수 없는 성욕에 그들의 밤은 길고도 험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동성애이다. 같은 궁녀끼리 정분을 트고 은밀하게 성욕을 풀었는데, 발각되면 엄중한 문책을 당했다. 하지만 한참 때의 궁녀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 역할을 나누어 애정행각을 벌였으며 때로는 삼각 사각의 관계로 번져 질투에 의한 치정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고 한다. 성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궁녀들의 동성애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최근 우리사회 동성애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데 사실 동성애는 인간의 본성에 감추어졌던 욕구이다. 따라서 동성애를 무조건 터부시 할 것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문제 해결의 방안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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