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1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청와대를 향해 “정치판을 깨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정 의원은 “87%의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이고 “국회의장의 중재 하에서 여야 합의로 개정안을 수정해 정부로 이첩하는 등 국회에서는 나름대로는 성의를 다 했다”며 개정안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비박·친이계 중진 의원으로 분류되는 정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대표적인 친박계 의원인 이정현 최고의원이 어깃장을 놓았다. 이 의원은 “ 법을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고 던질 수 있느냐”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몇 년 뒤면 설립 70년에 이르는 국회에서 법 하나를 애매모호하게 만들면 일반 국민이 입법부에 어떤 신뢰 가질 수 있겠냐”며 정 의원을 쏘아붙였다. 이 의원은 회의가 끝난 후 “위헌적인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의 당연한 책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가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자 새누리당 내 계파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정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청와대 비서들의 행태를 보면 도저히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청와대 관계자들을 향해 수위가 높은 비판을 내놓았다. 반면 친박계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글자 하나를 고쳐서 정부에 이송했다고 해서 위헌 논란을 불식시키지는 못해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원내대표의 상황 인식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개정안 처리를 주도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당내 계파 간 갈등은 파국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총선을 앞에 둔 상황이라 힘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원내지도부의 사퇴와 개정안의 재의결 사이에서 여당 의원들이 줄을 서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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