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초라하다 못해 참담했다. 어 회장의 경영방침이 잘못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80%에 달했고 민 행장에 대한 부정적 의견 역시 61%에 달했다. 조합원들은 특히 지주사가 은행의 자율 경영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은행 경영진은 지주사의 경영권 침해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생각이 비단 내부 직원들만의 느낌일까. 사실 어 회장이 은행 업무에 시시콜콜 관여하는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프라이빗뱅킹(PB)센터 개점 같은 은행의 개별 행사에 나타나 은행장을 대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은행 개별 상품에 대한 그림도 스스로 그린다. 지난 4일 신년 인사회에서는 "엄청난 상품이 나올 것"이라며 은행의 상품 전략까지 친절하게 얘기했다.
경제연구소ㆍ전략기획부 등과 같은 은행 내 주요부서는 진작에 지주사로 이관됐다. 얼마 전 단행한 은행 임원인사에선 어 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은행 곳곳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은행장의 고유 권한인 인사를 민 행장이 아닌 어 회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외부에서 어떻게 볼까.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가 계열사 현안을 챙기는 게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은 지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에 이르기도 한다. 문제는 행장 선에서 처리할 사안조차 회장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 은행장의 존재 가치가 빛을 잃는다는 점이다. 은행 수장이 지주사 회장 눈치보기에 급급한데 여타 시중 은행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얼마 전 만난 국민은행 직원은 "은행 고객 중 민병덕 행장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자조 섞인 말을 던졌다. 그는 "행원 사이에선 어 회장이 은행장이고 민 행장은 수석 부행장 지위로 떨어졌다는 인식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설문 중 마지막 항목은 국민은행의 가장 큰 리스크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절반이 넘는 조합원들은 'CEO 리스크'를 꼽았다. 이들은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둘 모두를 CEO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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